열린다 비유 : 포도원 품꾼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3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류모세 목사님의 책을 볼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기쁨이 무척이나 큽니다. 특히 이번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처음 알게 된 내용들이다 보니 더 많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서 나온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워낙에 유명한 비유인데다가 설교자들이 자주 설교하는 본문이다 보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적지않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비유는 설교자들이 별로 다루지 않는 본문이라 거의 모든 내용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차례 읽어보기는 했었지만 워낙에 해석이 난해한 본문이다보니 설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이 비유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했다는 자신감과, 앞으로 이 본문으로 제대로 설교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되었던 부분은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모집하기 위해 무려 다섯 차례나 인력시장을 방문했고, 또 청지기에게 시켜도 되었을 그 일을 굳이 자기가 친히 감당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포도원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을 이유로 들고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인력시장에 처음 갔을 때 이미 충분한 품꾼을 구할 수 있었지만, 포도원에 돌아오고 난 뒤에도 인력시장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눈에 밟혀 굳이 필요치도 않은 품꾼을 데리고 오려고 인력시장에 네 차례나 더 갔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저자는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의 품삯을 역순으로 지불한 이유에 대해,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이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깨서 청중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임을 고려할 때에, 이러한 순서가 상당히 의도적으로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넘어가서 품꾼들의 불평불만이 정당하지 못한 이유(이는 포도원 주인의 결정이 정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과의 계약 내용을 어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있어서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에게 사용한 '친구여'라는 호칭의 의미라던가, 품꾼들이 말한 '더위'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은 본문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저자가 포도원 주인의 말을 다시 정리해 놓은 문장도 마음에 깊이 와 닿았는데, 저자는 포도원 품꾼들이 포도원에서 더위를 무릅쓰고 일한 것 만큼이나 포도원 주인도 더위를 무릅쓰고 인력시장에 직접 나가서 품꾼들을 모집해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도원 주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했던 비참한 처지의 품꾼들에게, '거지에게 적선하듯이'가 아니라, '정당하게 일하고 돈을 받아갈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한 모든 품꾼들에게 그들의 가족들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품삯을 주기를 원했고, 그래서 늦게 일하기 시작한 품꾼들에게도 처음부터 일한 품꾼들과 동일한 품삯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일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복지적 차원의 지원'이라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 놓은 이 품꾼들은 악한 자들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품꾼들의 태도가 그저 악한 정도를 넘어 사악하기 그지없는 태도라고까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포도원 품꾼들은 포도원 주인에게 자기들이 수고한 만큼 더 많은 품삯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당시의 사회적 통념상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노사관계와 달리 품꾼들은 포도원 주인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로서 포도원 주인이 자신을 품꾼으로 뽑아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품꾼들의 그러한 태도는 단순히 포도원 주인의 자비를 '기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의 재산에 대해 '부당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심장과 눈'에 관한 유대인들의 인체관과 '선한 눈과 악한 눈'이라는 관용어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 비유 속의 품꾼들이 보여 주고 있는 태도가 포도원 주인의 재산에 대한 탐욕과 시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포도원 주인의 죽음을 바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악한 태도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후견인과 의뢰인이라는 관계, 그리고 시기와 질투의 차이점과 같은 중요한 개념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는데 제자들은 계속해서 누가 높으냐, 누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냐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보상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가에 대해 가르치심으로써 제자들의 다툼을 종결시키고자 하셨다." 그런데 저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설명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저자의 설명이 제가 평소에 믿어 왔던 차등상급론을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계속해서 읽어가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보상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우리의 일한 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 받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상급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것임에 틀림없고, 그렇다고 한다면 상급에 있어 행위에 따른 차등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해도 그 차등의 폭은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받는 수준에서 그렇게 크지 않은 수준에 그칠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포도원 주인의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왠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공산주의 사상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공산주의가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일한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분배받는 모습에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가 사회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와 비슷한 원리(사회주의?)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고 해도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포도원 주인의 긍휼과 자비가 넘치는 따뜻한 마음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때에 그것에 대해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해석하기 어려웠던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그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저자가 이 비유에 관한 자료들을 상세히 조사해서 잘 정리해 준 덕분에 이 비유에 관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이 서평은 두란노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