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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이 소설의 원제를 살펴보니 'hodejegerne'라고 되어 있더군요. 저자가 노르웨이 출신이라니 노르웨이 단어가 맞을 겁니다. 생전 처음 보는 생소한 단어라서 책에 적혀 있는 이름을 인터넷 검색란에 옮겨 적는 동안에 세 번이나 스펠링을 고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검색 결과는 무척이나 쉬운 의미의 단어였습니다. 'headhunter(헤드헌터)'라는, 이제는 우리에게도 많이 익숙해진 단어였습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기업을 대신해 스카웃해 주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지요.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원시 부족들이 상대 부족들의 머리를 잘라오는 '머리사냥(Head Hunting)'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군요. 무척이나 섬뜩한 단어인데 어쩌다가 기업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이 하는 일이 한 기업의 머리 역할을 하는 인물을 다른 기업으로 옮겨 감으로써 원래의 기업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제목을 왜 굳이 검색해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이 소설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서였다고 답변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저자의 이력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 북유럽의 제프리 디버'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 유명 작가일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의 유명 록 밴드의 보컬도 맡고 있다더군요. 사실 저자에게는 작가로서의 명성에 따라 붙은 다양한 수식어가 더 많았지만, '북유럽의 제프리 디버'라는 이름이 특히 마음을 끌더군요. '북유럽'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과, '제프리 디버'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작가로서의 탁월함이 혼합되어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이러한 수식어가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직업 중에 어느 것이 본업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작가가 본업이고 가수는 취미생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작가로서의 능력을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존 엘드리지의 '와일드 하트'라는 책을 보면 남자에게는 세 가지 야성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싸우고 싶어하는 야성, 둘째는 모험에 뛰어 들고 싶어하는 야성, 셋째는 미인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또는 지켜주고 싶어하는) 야성.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바로 이 세 가지 야성이 생생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절대로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헤드헌터라는 정상적인 직업 외에 미술품 도둑이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술품 도둑이 된 데에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 이유입니다. 알콜중독자로서 가정을 책임지지 않았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을 만한 훌륭한 남편이 되어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훌륭하다는 기준이 경제력이라는 측면에 치우쳐있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면접했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미술품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어떤 보안업체와 거래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작업 대상을 물색하고, 동업자(헤드헌터라는 위치를 이용해 보안업체에 취직시켜 놓은)의 도움을 받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 미술품을 훔쳐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화랑에서 아내로부터 소개받은 한 인물에게 루벤스의 작품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훔치기 위해 들어간 그의 아파트에서 아내가 저지른 부정의 흔적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배신까지 확인하게 되면서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필사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아내가 소개해 준 그 인물이 전직 특수부대 요원 출신으로서 무서운 추척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인물이 재직했던 기업에서 개발한 젤 형태의 위치정보 발신기가 주인공의 머리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라져 있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언제 붙잡혀 죽을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의 머리에 발라져 있던 위치정보 발신기를 이용해 자신을 뒤쫓던 그 사람을 살해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덟 명의 희생자가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두 사람이 주인공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그 중에 그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는지는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할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소설을 1/3 정도 정독하며 읽다가 그 다음부터는 장과 장 사이를 건너 뛰어 가며 읽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렇게 읽은 부분들은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독해서 읽었지만 도저히 결말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영화들을 보다가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몇 배 속으로 빨리 돌려 본 적은 있어도,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중간에 건너 뛰어 버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런 일을 해 보았습니다. 왠만하면 참고 그대로 읽었을 텐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저자가 어떻게 상대의 마수를 피해 살아남는지, 또 어떻게 여덟 명이나 살해된 그 범죄의 현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제거하고 교묘히 빠져 나오는지 참으로 기가먹힐 정도입니다. 이러한 스토리를 구상해 낸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북유롭의 제프리 디버'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최고의 추리소설이 막심 샤탕의 '약탈자'였다면, 올해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은 아마도 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