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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 - 복음을 통한 철저한 돌이킴
데이비드 플랫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1년 3월
평점 :
한국에서였다면 이제 신학을 마치고 군대 갈 채비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군대를 다녀와서 이제 막 신학교를 졸업할 그 나이에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사람이 있다. (2006년에 담임목사가 되었는데 현재 32살이라니 27살에 담임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교회에 담임 목사로 부임하기 3주 전에 중국의 지하 교회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받은 충격과 도전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새로운 부임지에서 특별한 시도를 해 보기로 결정한다. 그것은 매주 금요일 저녁 여섯시부터 교회에 모여 자정이 되기까지 성경을 공부하고 세계 곳곳의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오직 성경공부와 기도로만 운영되는 그 시간에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싶었는데 천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성도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재정과 시간을 들여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목사이고, 이 책에 기록된 내용들은 바로 금요일 저녁의 그 특별한 시간에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성경 말씀 가운데 제자도에 관한 핵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사실 성도들을 변화시켰던 것은 제자도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들을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에 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사실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머지 반쪽에 대한 책도 언젠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설명은 구구절절이 옳은 것 뿐이다. 세계의 핍박 받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성경을 통독해야 한다. 자신의 재정적인 희생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섬겨야 한다. 재정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몸으로도 헌신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교회의 모든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다섯 가지의 과제를 일 년 동안만 성실하게 실천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전과는 다른 변화,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충분하게 경험한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가 책 제목을 래디컬이라고 지은 것은 아마도 이러한 수준의 헌신이 미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래디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 정도의 헌신을 가지고 한국 교회에서 래디컬하다고 한다면 비웃음을 사기에 딱 알맞지 않은가 싶다.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모여 한 시간 가까이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는 데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적어도 두 시간에서 밤애 새기까지 부르짖어 기도하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는, 주중에 겨우 한 번 모여 네 시간 정도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 래디컬하다고 말하면 우스울 뿐이다. 재정에 대한 헌신 역시 매 월마다 소득의 십일조를 교회에 갖다 바치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는 마찬가지로 생각될 뿐이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일들에 헌신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몸으로 봉사하는 것 뿐인데, 최근에는 이러한 일들에도 의식이 깨인 사람들의 헌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물론 목회자를 비롯하여 온 성도들의 의식이 깨어 있는 교회들의 이야기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있는 래디컬한 일들이 한국 교회에서는 그리 래디컬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신앙 생활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정도의 헌신을 가지고 래디컬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미국 교회의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미국 교회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그러한 미국 교회들을 벤치마킹하기에 급급한 한국 일부 대형 교회들 역시 비슷하게 낮은 수준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미국 교회의 헌신 수준이 이 정도로 낮아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말하고 있는 대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주의, 기복주의적인 메시지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어떤 자매의 이메일 내용처럼 '성경을 그대로 읽는 것보다 못한 저급한 설교들' 때문이다. 성경을 말하기보다 처세술을 소개하는 설교들 때문이다. 결국 그 모든 책임은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목회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저자가 중국 처소 교회에서 했던 것처럼 성경의 모든 책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개괄적으로라도 훑어 줄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아직까지 미국 교회와 같은 상황은 아니라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점차 미국 교회와 같이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설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복주의적이고 성공주의적인 내용의 설교에 길들여진 성도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는 한국 교회에서도 이 책이 래디컬한 책이라고 인정받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