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
랍 벨 & 던 골든 지음,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영서 원제는 '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고 싶어하신다'입니다. 그런데 번역된 책 제목은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입니다. 얼핏보면 서로 연관되지 않는 것 같은 제목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제목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중심적인 내용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의 영서 원제는 하나님(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로서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 곧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유배(유수)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구원은 영혼 구원을 넘어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이 책의 한글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먼저 경험한 자로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구원함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세상에 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사장 나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그러한 사명을 잊고 살아가고 있기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다시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의 사명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내산과 예루살렘, 그리고 바벨론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흐름을 간략하게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창조의 하나님'보다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고통에 찬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며, 그 부르짖는 자들을 압제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라고 설명하면서, 출애굽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뒤에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자신이 행한 구원의 사역을 계승하도록 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가 시내산에서 계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에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솔로몬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이었다는 이 인물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솔로몬에 대해 내리고 있는 평가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저자는 솔로몬이 새로운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 인물로서 이스라엘을 새로운 이집트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에 의해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비참한 노예 생활이 이스라엘 땅에서 다시금 재현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땅의 그 노예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가나안 원주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그러한 대우가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바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잘못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은 그들을 동원해 성전과 궁궐을 건축한 것 뿐만 아니라 여러 요새 도시들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병거와 말들을 이집트에서 수입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강력한 패권 국가, 곧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힘으로 다른 나라들을 압제하는 초강대국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국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제사장 나라로서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끌려간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구원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다시금 제사장 나라로 살아갈 기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자는 그 기회를 여는 일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과 또 다른 다윗의 아들(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하면서, 솔로몬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제국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신 나라는 하나님이 뜻하신 제사장 나라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좇아 제사장 나라로서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위나 권력으로 다른 이들을 압제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그 힘으로 가난한 자들, 압제받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영혼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난한 자들, 압제받는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였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도전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도구로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랍시고 우상 따위를 만드는 것이 필요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책임이 주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할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최종적인 판단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실패한 이스라엘의 뒤를 좇아가고 있으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에는 바벨론 유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 길을 걸으며 돌이키지 않고 있으니 정작 예수님께서 구원하셔야 할 사람들은 불신자들보다도 기독교인들이 우선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향해,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이웃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라. 그리하여 내가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라."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이 책은 너무도 분명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입니다. (2011년 들어 제가 읽은 책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별 여섯개가 아깝지 않습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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