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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벌들의 악행이 알려진지 근 8개월정도가 지났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X파일이라는 형태로 그 내용들이 나돌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세하고도 적나라하게 밝혀진 것은 이 나라 역사에 있어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에 조정래 작가님이 써 내신 허수아비춤이라는 소설도 어쩌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 두 권의 책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일한 신념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경제구조가 재벌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뒤틀려지는 것에 대한 글로 쓰여진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춤이 보여주는 재벌들의 어두운 단면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중심적인 얼개가 얼마 전 제 큰외삼촌을 통해 들었던 말씀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도 읽을 만큼 읽었고, 신문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어 왔다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대부분 마음 속에 품고 있을만한 이야기,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속에 품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답답함과 함께 풀어 놓는 그런 류의 이야기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흡입력으로 인해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우리의 마음을 찔러 들어옵니다. 실제로 벌어진 듯한, 아니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인해 우리는 그들이 벌이고 있는 더러운 일들에 대해 더욱 더 역겹고 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작가가 전지적인 시점에서 들여다 보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더러운 탐욕과 지독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 적나라한 느낌이 몸서리쳐 질 정도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태봉 그룹은 아마도 삼성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몸답고 있는 일광 그룹은 어쩌면 모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기업일 수도, 아니면 LG나 현대를 모델로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에서는 일광 그룹이 태봉 그룹이 이미 가동하고 있는 '조직'을 벤치 마킹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일들은 태봉 그룹에서 이미 다 벌였었던 일들입니다.
정부의 정보기관 간부를 직원으로 영입해서 그룹 내의 동향이나 사회 동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현직 검사를 채용해서 법조계에 대한 로비를 펼치고 하는 일들이, 이전에 태봉 그룹의 '조직'내에서 그와 같은 일들을 담당했던 박재우라는 인물을 통해 일광 그룹에서 다시 한 번 그대로 재현됩니다. 그리고 작가는 박재우의 후배이자 직속 부하였던 강기준이 사직서를 던지고 거상 그룹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이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거상 그룹 역시 태봉 그룹과 일광 그롭에서 벌였던 그 일을 벤치 마킹하고자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태봉 그룹에서 시작된 그 모든 일들이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재벌들에 의해 끝없이 반복되고 재생산 될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어떻게든 끊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바램이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공감이었을텐데,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과연 이 문제가 우리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하는 답답함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예전과 같이 군부 독재가 이루어진다면 과연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와 같은 상황이 온다면 재벌은 더 큰 힘을 얻어 예전보다 더 무서운 일들을 저지르게 될 지도 모릅니다.
결국 작가가 허민이라는 극중 인물의 글을 통해 내비치는 것처럼 이러한 문제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국민들의 불매운동 같은 소극적이지만 강력한 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 작가가 내린 결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어떤 국민이 그와 같이 부도덕한 문제들에 항의하기 위해 고장없고 사용하기에 편리한 좋은 제품을 거절하고 그보다 못한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겠는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부도덕한 재벌들에 맞설 만한 실력있고 정의로운 기업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후원하고, 또 스스로 그와 같은 기업을 일구고자 하는 기업인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안철수 연구소와 같은 건전한 기업 철학을 가진 기업들이 일어나도록 돕는 일들 말입니다.
결국 재벌들이 벌이는 이와 같은 불의한 일들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 개혁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하나의 입문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문서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교과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경제 정의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미 시중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책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건저하기 그지 없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벌들에 의한 심각한 경제 독재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되기를 바라고, 또 그와 같이 깨어 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발견하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