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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소설로 읽는 20세기 수학 이야기 ㅣ 에듀 픽션 시리즈 7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리스 사람들을 존경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스에서 이 소설이 출간된지 10개월 만에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었다고 하니 그리스 사람들은 수학과 문학에 있어서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뛰어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어 본 소설 중에 이 책만큼 어렵게 읽은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리도 어려웠던 이 소설이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봅니다.
완벽주의적인 기질 때문에 대충 읽어도 되는 가벼운 책들이 아니면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읽어 가는 습관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중에 나오는 수학 이론들을 하나 하나 다 이해해 가면서 읽어 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진도는 느리고 마음은 답답하고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이과 계열에서 공부한 분들이라면 몰라도, 문과 계열에서 공부한 데다가 수학이라면 치를 떨던 저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중간 부분을 지나면서부터는 수학 이론이 등장해도 대충 그런 이론이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 이론들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아예 훑어 보지도 않고 넘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학 이론들은 내용 전개에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요소였기 때문에, 대충이라도 훑어 보고 넘어가지 않았다가는 내용 이해에 곤란을 겪고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여 가면서 공들여 읽어가는 동안에 '내가 이런 어려운 책도 읽고 있다니' 라는 묘한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학을 무던히도 싫어하는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수학 이론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과거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일어났던 진리 은폐를 위한 살인 사건과 유사한 어떤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을 통해 느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제 마음을 이 책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수학 박사라는 이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설의 구성과 전개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공식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무슨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구조라고 해야 할까요. 소설의 앞 부분에서는 절친한 친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주인공에게 전해지는 것으로부터 내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주인공이 그 친구와 함께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그 친구를 살해한 범인이 누구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갑니다.
복잡한 수학 이론에 대해 주인공과 친구과 함께 논쟁하는 내용만 없었다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만 그 이론들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이해해 보려는 노력으로 인해 소설의 맥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책의 내용을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순서대로 되짚어 보니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전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합니다. 만약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그 복잡한 수학 이론에 관한 토론은 그저 저 사람들이 뭔가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나 보다 하고 신경쓰는 일 없이 넘어갔을테지요.
이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등장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던 스페인 화가들 중의 한 명이 그 유명한 피카소라는 화가였음을 소설 중반부에서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이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와 허구가 적절히 섞여 있는 그 묘한 매력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책을 덮으면서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은 사람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그것도 아주 절친한 친구를 죽이는 것조차도 충분히 정당화 할 수 있는 존재로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정당성이 사실은 불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확보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될 처절한 후회를 내다본다면 결코 그와 같은 끔찍한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제라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혹시라도 우리의 삶에 찾아오게 될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설들에 식상해 있거나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 좀 했다고 자신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쯤 도전해 볼만한 소설입니다. 물론 저와 같이 수학에 치를 떠는 사람일지라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학에 관한 내용을 아예 무시해 버리고 읽어나가겠다고 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에 대해 도전해 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우습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읽어 보시면 제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