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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22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그의 3부작 역사서의 20세기 완결편 제목이기도 하다. 이 스케일 웅장한 역사학자는 제국주의와 그 전개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였다. 그리하여 17세기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제국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극단의 시대까지 서술하고 있다.
'극단의 시대' 한 귀퉁이에 우리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우태의 저작 남부군 이후, 한국의 사회적 조건이 크게 달라졌다. 그리하여 '이현상 전기'가 출간될 정도가 되었다. '이현상 평전'의 '묘사'는 '극단의 시대' 한자락에 위치한 한국의 슬픈 역사적 기록이다. 극단의 시대에 '극한의 상황'속에 처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이현상은 어느 시점에서 총맞아 죽을 운명이 결정되었을까? 나의 관심사가 이것이다. 내가 '전기'를 쓴다면, 시대와 역사적 조건에 대한 '배경'을 심층적으로 이해한 다음,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 사유와 느낌 하나 하나를 그사람의 관점에서 추적체험 하면서 배경의 시대를 여행해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연기론적 사유와 '업의 이론'에 근거하여, 직면해가는 상황과 사태속에서 그 사람의 선택과 이후 행로 이런 것에 대하여 서술하고 묘사해보고자 한다. 이런 경우, 어느 순간의 '업'이 그로 하여금 총을 맞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는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언제 그러했을까? 강동정치학원 '입교'가 결정된 순간 그러하지 않았을까?
이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강동정치학원에 입교하여 군사적 기능을 닦은 이현상은 남으로 내려와서 지리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유격대'를 모아서 조직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바로, 다음 순간, 이현상이 '극단의 시대' 한 귀퉁에서 총을 맞고 죽을 운명이 결정된다. 나는 그 사건이 여수순천 반란사건이라고 생각한다.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사건이었다. 바로 여기서, 여러 사람들의 짧은 인생이 결정되는데, '군사 반란'이라서 그러하다는 측면 보다는, 전혀 전략이나 전술 그리고 준비 이런것 고려하지 않고 거의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그 핵심에 '지창수 하사'가 있었다. 광주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이 지창수 하사관의 엄청난 행동 능력이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곧바로 병사들을 전투상황으로 돌입하도록 하면서 맨 먼저 장교들을 보이는대로 사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14연대에는 20명의 남로당 중앙당 비밀당원이 있었다고 한다. 병사 비밀당원들은 도당소속, 장교들은 중앙등 소속. 서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발적 봉기속에서 장교들을 보이는대로 사살하면서, 계획없는 봉기의 '실패'를 그 순간 예비해 버린 셈. 물론 이 와중에 김지회 중위는 살아 남았지만, 결국, 홍순석 중위와 더불어, '주막'에 유인되어 술한잔 걸치고 죽음에 이르는 운명이 이때 준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의 시대'에 '극한적 상황'속으로의 돌입을 '충동적 결정'으로 행한다! 이 시점에서 순천역에 도착한 이현상이 '이럴수가!' 하면서 학살사태에 넋을 빼았겼다는 것이고, 바로 이때, 이들의 운명은 결정된 셈이다. 대한민국 남쪽 끝 순천에서 빚어진 14연대의 반란과 엄청난 대학살 사태는 사실, 오늘날 우리가, 아프리카발 뉴스에서 느끼는 끔찍함을 완전히 넘어서는 사태였다. 한발짝만 역사의 바깥으로 나아가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범상치 않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여 불교와 도교처럼 '초월적' 종교들까지 어우러져 문화국가를 일구어온 한국인들이 이 당시에 잔혹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카오스 이론에 따라, 여수 순천에서 벌어진 사태는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되는데 그게 한국전쟁인 셈이었다. 결국 순천역에서 이현상이 넋을 잃고 학살 사태에 한탄하면서 14연대 봉기의 성격을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며 무계획적인 사태로 인식하는 그 순간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무계획'이라는 것은 앞으로 살아남을 확율이 적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불과 4년여만에 '대성골'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비운의 운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상은 대성골에서는 목숨을 구하지만 유격대 해산가 본인 자신이 하산을 결정한 직후 결국 총을 맞고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에릭 홈스봄의 '극단의 시대' 규정에 의한다면 20세기는 사람 살만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럴 밖에 없다.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전대미문의 전쟁이 벌어진 시대가 20세기였다. 정치의 연장으로서 '전쟁'이 아니라, 과도한 잉여물자 소모의 경제적 행위로서 전쟁이 시행된 시점이 20세기였다. '전쟁물자'도 한두종류가 아니라 거대한 항공기에서부터 전차, 대포, 개인화기 등등 다양해졌다. 여기 잠수함이나 초거대 전함, 항공모함까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합류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와 기술이 이렇게 효율적 효과적으로 개발되고 발명되며 사용된 적이 없었다.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그레이트 워'라고 기억한다는데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다. 당시 소련인들은 2천만명 정도가 사망했으니 말다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인들이 약 1천2백만 정도 죽었다고 한다. 당시 인구가 약 6천만 정도였으니 6분의 1이 죽은셈인가. 독일인들이 이랬다. 그런데 또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붙이는 역할을 독일인이 떠맡게 되었고 그 결과 극단의 시대에 가장 '극악한' 나라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허나, 독일인들은 연극의 대본에 따라, 그저 악역을 맡은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사실 독일과 소련의 엄청난 '소모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히틀러를 월가의 금융에서 지원했고, 소련의 군수물자는 전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미국의 루즈벨트가 지원했으니, 결국 '엄청난 생산력'을 갖춘 미국에서 모든 것을 대줬다는 얘기다. 동유럽 대평원에서 독일군 3백만이 소련군 5백만하고 맞붙어 두나라가 '체계적으로' 소모된 과정이 노르망디 상륙 직전의 전쟁 모습이었던 것. 이런 이유로 음모론의 학자들은, 월가에서 미국의 돈을 거두어서 독일에 투자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투자 덕분에 미국이 대공황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1930년대에 독일은 경제부흥을 이룩하면서 비밀 군비증강으로 돌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이런 일을 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다. 물론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전 '독일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강자'가 되어 영국과 더불어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을 확대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허나, 일단 배역이 정해진 이상, '전쟁 도발'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 음모론가들의 관점이다. 훗날의 북한 김일성이나 이라크 후세인, 이란의 호메이니,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 등등 이 비슷한 배역은 줄줄이 이어져갔다.
정말 심하다! 이런 '기획전쟁설'에 의한다면 또 누군가 전쟁유발의 악역을 맡게 된다는 것인데, 21세기초인 지금은 그런일이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극단의 시대'가 종식되고 좀더 평화롭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공생하는 시대가 되면 안될까?
한국에서는 1940년 말에서 1950년초까지 몇년 안되는 기간동안만 '빨치산'이 존재했다. 한국의 지형과 기후는 빨치산 투쟁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현상의 전기는 그러니까, 어떻게 '극단의 시대'에 역사의 '계기'를 타고 결국 '소멸해 가듯'한 빨치산 투쟁으로 한 인간이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여기, 그릇된 판단은 여기 저기 끼어들고 있는셈이다. 지창수 하사의 충동적 결단이 특히 그러했고 바로 이와같은 '역량'을 과하게 평가한 박헌영의 판단이 그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의 성격을 그릇 판단한 김일성의 오류가 가장 결정적일 것이다. 물론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확인하고, 애치슨이 한반도 방위선을 제외한다고 선언한데다 미군까지 철수 했으니 전쟁의 '유혹'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꼭 그 시점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적일까? 문화적일까? 1990년 이라크 후세인이 씨아이에이 장학생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란-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마무리한 직후에, 미국인의 '방문'을 받고 들은 얘기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가 중동에서 어떻게 하든 관여할 생각이 없다. '쿠웨이트'라는 먹이를 먹어도 관여 않겠다면서 '흘린' 것이다. 여기 넘어가서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세인. 휴! 포클랜드를 침공한 당시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 '먹을 것'이 눈앞에 나타나고, 먹어봐 먹어봐 모른척 할께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래서 행동으로 나아간다! 행동력이 강력한 '캐릭터'가 이럴때 필요한데, 하필이면 김일성과 후세인, 밀로세비치, 그리고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대통령 전부 왜 그리 캐릭터가 비슷한 것일까? 사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역시 또 음모론 시각에 의하면, 영국의 빅터 로스차일드는 수천만 달러를 러시아 혁명에 투입했고 성공했다. 미국의 데이비드 록펠러는 트로츠키에게 1만달러를 제공했고 이 돈을 가지고 러시아에 돌아온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혁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 혁명을 지정학적으로 해석하면, 당대의 강대국 러시아의 퇴장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탈락, 그리고 브레스토-리토브흐크 조약에서 보듯 동유럽 지역의 '독일화' 또는 유럽화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짧은 전간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서 냉전체제가 성립했다는 것인데, 보다 확실한 '계기'의 폭발이 필요했고 그래서 '한국전쟁'이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이유로는, 스탈린이 한번 정도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군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충분히 있긴 했지만 유럽지역에서는 과도한 모험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다. 베를린 봉쇄를 시험적으로 해 보고 나서, 아시아에서 대리 전쟁을 벌리는 것이 소련체제 안정화에 도움된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래서, 요컨대 대리전쟁을 한반도에서 유발한 셈인데, 문제는 이 '전쟁'으로 나아가는 약 5년간의 '시간대'에 있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전평과 민전과 조선공산당 그리고 나중 남로당이, '전쟁기획'에 걸맞는 배역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당시 미군정은 남로당 창당식에 와서 축사까지 하는 정도였다. 기가막힌(!)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추긴 것일까? 그럼 이현상은 '소멸'과 '죽음'이 예정된 '배역'을 맡아서 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배역치고 정말 험난하다. 지창수나 김지회의 경우도 그렇다. 이들은 그야말로 짧은 인생을 살고 나서도 '반역자' 낙인을 갖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이현상은 물론 남에서 반역자이고 북에서는 영웅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획전쟁의 배역중 하나로 보는 역사인식은 정말 비극적이다.
이현상 전기에는 그야말로 '극단의 시대'에 관한 모든 얘기들이 다 나오고 있다. 체게바라? 약과다. 이현상의 짧은 수년간의 체험은 그야말로 '체게바라' 정도는 간단히 돌려 세운다. 짧은 기간동안의 역사적 배역! 특히 청주시내 습격 사건 같은 것은, 국군이나 경찰의 관점에서, 나아가 단정노선의 이승만 정부 관점에서는 '치욕'이었다. 만일 체게바라식 관점을 택하면 낭만이 되겠지만 그러나 체게바라에 비교하여 이현상의 행장은 너무도 짧았고 그중 가장 강렬했던 것이 청주시 기습이었던 것. 이것을 끝으로 더 남으로 내려간 이현상은 '예정된 소멸'의 행로를 밟게 된다. 당시 미국에는 너무도 많은 군수물자가 쌓여 있었고 이것이 국군에게 아낌없이 보급됬다. '배역'에게 맡겨지는 소품들일까? 유격대 또한 보급창고 습격에서 얻은 물자가 많이 비축되어 있었다. 곳곳에 '신형 엠원 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정도로 물자가 남아 돌았다는 이야기이며 엠원 소총은 특히 그러하다.
'극단의 시대'는 이렇게 과잉생산된 전쟁물자를 소품으로 전개된 시대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는 엠원소총과 티34탱크로 상징될 것이다. 북한 인민군은 짧은 시간동안에 스탈린이 보내준 물자로 무장했는데 그만큼 소련군에게도 물자과 무기가 남았다는 의미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남는 무기도 처리하고 무엇보다, 유럽지역에서의 긴장을 아시아쪽에서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안성마춤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통일 같은 것은 '기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도올이 한탄한다. 500만이 사상했는데 아무런 결과가 없다! 있다! 국제정세를 제대로 인식해야 맹동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 하나를 얻는다. '민족'의 개념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절대로 전쟁같은 수단을 회피하는게 옳다는 결론도 있다. 다른 것은 극단의 시대를 장식하는 군사 과학기술의 '극단'과 관련된다. 이현상이 남하할때 모습을 드러낸 비행기들은 당대의 최신 발명품 네이팜탄을 퍼부어댔다. 지상에 '불의 지옥'을 현현하는 이 무서운 발명품! 베트남 전쟁에서 1960년대에 가장 무참하게 사용된 이 폭탄은 바로, 그보다 앞선 한국전쟁에서도 엄청나게 투하된 것이다. 베트남 정글이 불타는 모습은 이미, 1950년 한국전쟁에서 시현된 바 있었던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세균까지 투하하여 이현상 부대는 전염병을 앓으면서 다수의 대원들을 잃었는데 글자그대로 세균무기의 실험장이 된 셈이다. 네이팜탄과 세균무기의 시현장이 한반도였던 것. '극단의 시대' 배경이 이 두가지 무기로 인식된다.
그래서 체게바라 얘기를 낭만으로 보는 사람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이현상과 그의 수하에 관한 이야기는 글자 그대로 어떻게 정해진 죽음을 향해 사람들이 나아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군에게서 넘치도록 보급을 받은 국군 3개 사단이 '토끼몰이' 식으로 유격대를 대성골로 몰아서, 박격포등 중화기로 거의 몰살을 시킨 이런 '작전'까지도 그렇다. 이후 베트남에서 시행되는 '토벌' 작전의 원형이 지리산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중요한 사실은, 폭탄이고 탄약이고 실탄이고 전부 남아돌았다는 것. 군복까지 그러했고 엠원 소총은 너무도 흔해 빠져서, 마치 유격대가 가져다 사용하게 창고에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전쟁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 영역에 속하게 된 것이고, 20세기가 극단의 시대가 된 이유이다. 사람조차도 '소모'품이 되어서 전쟁에서 소진되어 갔는데 그 와중에 '경기'은 활황이었고 완전고용이 실현되었으며 몇 나라는 경제가 완전히 살아났다. 당시 독일과 영국 특히 일본이 시혜를 받은 나라였다. 이현상과 그 수하들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 많은 잉여물자를 '소모'해주고,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동원된 국군이나 나아가 한국전쟁에 동원된 미국과 유엔군을 '뒷바라지'하면서 많은 달러를 벌었기 때문일까?
다행스럽게 내가 생존하는 시점은, 1960년대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지나서 현재 21세기 초이다. 정말 '운좋은' 시기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전쟁을 거치고 우리나라는 세계사상 유례없는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세가 꺾여서 지금은 매우 어려운 위기로 다시 진입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1950년대 이현상이 직면했던 상황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현상과 더불어,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면서 '봉기'의 길로 나아가 결국 1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지창수나 김지회, 홍순석 같은, '극단의 시대'에 '극한의 배역'중에서도 도화선에 불 붙이는 배역을 맡은 사람들에 비하면 약과 아니겠는가? 허나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옛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은 하여튼 살아야 하는 것이 주어진 '소여'라서 그러하다. 극단의 시대에서 가장 '극한적 조건'을 피해서 사는 것을 다행으로 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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