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개발의 정석 오늘의 젊은 작가 10
임성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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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010

이 부장은 자신의 불행이 결핍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만성피로처럼 달라붙어 자신을 소모시키던 그 둔한 불행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결핍 탓이라 믿던 때는 달릴 수 있었다. 더 많은 것을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p.59

대기업에 다니는 마흔여섯의 이 부장은 아내와 아이를 캐나다로 보낸 기러기 아빠다. 그저 그런 부부관계, 열심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존재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평생을 열심히 일해왔지만 모호한 미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현실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불행에 1을 주고 행복에 10을 준다면 대략 3.21 정도의 마음으로 정체 모를 허기를 참아내며 살아가는 이 부장에게 어느 날 만성 전립선염이 찾아오고 그 치료 과정에서 '아네로스'라는 걸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충만한 감각을 알게 되고 이 부장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얼핏 보면 이 책에는 전립선염, 아네로스, 자위, 오르가즘, 성기, 같은 단어밖에 안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헛웃음이 터지지도 하지만 결코 유쾌한 기분의 웃음은 아니다. 자조적이고도 씁쓸한 분위기가 이 책 전반에 깔려있다. 중년이 되어서야 우연히 알게 된 '감각'에 대해 그토록 집착적으로 탐닉한 이유는 그곳에 바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삶에서 자신은 분명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인생에 자신은 없었다. 자신의 몸이 직접적으로 느낀 통증과 황홀한 감각은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비존재'였던 이 부장이 비로소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과 같았다. 결국 이 부장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찾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계속해서 탐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라도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살아있는 존재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안정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한 노력 위에 서 있는지를.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주눅 든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아갈수록 실망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남편을 미워할 수 없었다. 겉보기엔 멀쩡한 안정을 위해 남편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p.162

아... 내가 전립선염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는구나 하고 조금은 당황하던 중에도 중년 이 부장의 감정은 무척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몇몇 순간은 참 안쓰러웠다. 화자가 아내가 된 부분도 그랬다. 하지만 결말은 이 부장에게 너무 한 것 아닌가 싶다. 무척 자극적이어서 인상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장의 이후의 삶은 어떡하냐고.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결말이다. 이 부장이 부디 잘 살아가기를. 비록 더욱더 씁쓸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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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빛
마이클 온다치 지음, 아밀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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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의 우리는 어리석다. 잘못된 말을 하는가 하면, 겸손하게 처신하는 법도 모르고, 수줍음을 덜 타는 법도 모른다.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그런 우리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배우고 또 성장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게 일어났던 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내가 성취한 것들이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도달한 방법에 따라서 말이다. p.372


배경은 2차 세계대전 후 아직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혼란한 영국이다. 어린 소년 너새니얼과 누나 레이철은 어느 날 아버지의 싱가포르 발령으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된다.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어머니의 동료가 아이들을 돌봐주게 된다. 아이들은 이 남자를 '나방'이라 부르는데 참 수상한 인물이다. '나방' 뿐 아니라 이후 집을 드나드는 인물들 모두 어딘가 위험하고 수상하다. 그들의 일상은 아슬아슬하고도 평온하게 흐른다. 하루는 지하실에서 아버지를 따라 간 어머니가 들고나갔던 트렁크가 발견된다.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며 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걸까.

1부는 수상한 '나방'과 갑자기 발견된 어머니의 트렁크로 인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별다른 사건 없이 다양한 인물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다룬다. 비밀스럽긴 하지만 딱히 뭔가 밝혀지는 건 없어서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갑자기 극적인 사건과 함께 눈앞에 어머니가 나타나고 영화처럼 1부가 끝난다. 2부에 들어서며 확 몰입이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너새니얼은 어머니의 고향에서 둘이 함께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는 한편, 전쟁이라는 혼란 속 어머니가 했던 일들을 추적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자신이 의지하고 지냈던 '이상한' 인물들도 추적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결코 쉽게 읽어지는 구성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1부를 읽을 때만 해도 뭔가 '폴 오스터'를 연상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2부를 읽을 때 개인적으로는 분위기가 전환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1부에서 2부로 이어지는 느낌이 굉장히 영화적이었다. 1부를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을 '좋았다'라고 기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전혀 없었는데 2부와 마지막까지 읽고 난 후엔 참 좋았다. 전후의 상황들은 당연히 어둡고 혼란스러웠지만 어디 하나 요란 떠는 부분이 없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하나 재정립되는 과정이 좋았다. 1부의 주요 인물인 '나방'과 '화살'도 인상적이지만 어머니 '로즈'와 '마시 펠론'이라는 인물이 정말 강렬했다. 이 책은 전혀 시끄럽지 않은 책인데 강렬하다는 표현이 쓰면서도 좀 이상하지만 인물들을 알아가는 시간은 정말 그랬다. 정말 이상한 감각인데 우아했다. 문장은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독특한 부분이 있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시종일관 비밀스럽다. 이렇게 우아한 전후(戰後)의 성장소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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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무장한 채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그곳이 아무리 어두워도 결국에는 불을 밝히고 떠나게 마련이다. 어른이 된 자신의 자아를 가져가니까.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목격하는 것이다.
- P166

이제 도시는 전보다 덜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이 삶을 재정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나는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시대를 살고 있었다.
- P202

우리는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알고 보니 지척에 있는 시대를 살아왔다.
- P385

우리는 간신히 유지되는 이야기들로 우리 삶을 정돈한다. 혼란스러운 곳에서 길을 잃은 듯이, 눈에 보이지 않고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을 모두 한데 모아 꿰맨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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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 고래들
마치다 소노코 지음, 전화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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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보통 12~25 헤르츠의 소리를 낸다. 대왕고래는 그보다 더 넓은 10~39헤르츠의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어느 날 일반적인 고래 소리보다 훨씬 높은 52헤르츠의 고래 소리를 포착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 고래 소리는 종종 포착되었지만 소리만 포착될 뿐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다. 이 고래의 소리를 다른 고래들은 들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겨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다. (검색을 하다 보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휴대폰 번호가 5252였단다)

이 책에는 가족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계속해서 소리를 내지만 세상에 가닿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52헤르츠의 고래들과 같은 존재들이 나온다. 주인공 키코는 할머니가 생전에 살았던 작은 바닷가 마을로 이사 온다. 어머니와 재혼한 의붓아버지 아래에서 학대를 받았던 키코는 다행히도 소중한 존재들을 만나 학대받았던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이후 일어났던 일들이 큰 상처가 되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바닷마을로 온 것. 여기서 키코는 한 소년을 만난다. 분명 학대받고 있을 것 같은 소년을 키코는 모른 채 할 수 없어 아이를 돌봐주게 된다. 이후 아이의 사연과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온 키코의 사연이 번갈아 진행된다.

키코에게 미하루나 안상이 있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소년 이토시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던 안상의 아픔과 마음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놓쳐버리고 말았던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소년 이토시의 손을 꼭 잡은 키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죄책감이나 상처도 매만질 수 있었고 또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래서 아픈 이야기지만 따뜻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키코, 미하루, 안상, 이토시는 모두 52헤르츠의 고래들이다. 하나의 존재는 외로울지 몰라도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52헤르츠의 고래'들'이라는 제목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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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에게는 나와 같은 냄새가 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고독의 냄새. 이 냄새는 무척 집요하다. 아무리 곰꼼히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고독의 냄새는 피부나 살이 아닌 마음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 P57

주파수가 달라서 동료를 만날 수도 없대. 예를 들어 무리를 지은 동료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어도,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도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는 거지. 사실은 동료가 많이 있는데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전하지 못한다. 얼마나 외로울까?
- P80

기대가 없어. 기대를 걸고 싶어도 순순히 걸지 못한다고나 할까? 기대를 걸었다가 계속 좌절만 맛본 얼굴이야.
- P147

안상 역시도 52헤르츠 소리를 내는 한 마리의 고래였다. 필사적으로 소리 내 노래했을 텐데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상이 데리고 나온 세상에서 나는 크고 알기 쉬운 목소리를 좇아가 버린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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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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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이 하늘 어딘가에 적혀 있는 인권이니 정의니 하는 것을 섬기면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있다고 가정한 걸 섬기면서 살아가면 돼요. 하지만 하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의나 인권이,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이 없는 세상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요.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걸 존재한다고 믿고 섬기는 일을 사랑이라고도 하지만 기만이라고도 하죠. p.490

스에오의 엄마는 스낵바에서 일하며 단골 손님을 상대로 성매매를 해 겨우 생활을 꾸려간다. 어린아이가 받아야 할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상가에서 음식을 훔쳐 겨우 살아간다. 생활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는데 갑자기 여동생이 생겼다. 사는 것은 더 어려워졌고 엄마도 사라졌지만 여동생만은 지켰다. 이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동생만은 평범한 세상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어렵게 빚을 갚으면 또 다른 빚이 생겼고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추락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의지만으로 이 시궁창 같은 세상의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기베 미치코는 프런티어의 기자다. 성매매 여성 살해 사건과 기업의 협박 사건을 연관성을 쫓다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 시리즈는 기베 미치코를 내세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주 캐릭터가 기자인 만큼 사회 문제, 자극만을 쫓는 언론의 행태를 잘 보여준다. 사회파 소설이라고는 해도 위트라고는 없는 캐릭터에 크게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직업의식과 끈질기고도 우직하게 취재를 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기베 미치코의 매력이구나 생각했다. 중간 부분에서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후반이 좋았다. 특히 스에오가 살아온 환경, 그러니까 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한 이해가 무척 날카로웠다. 우리는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너무 쉽게 얘기하곤 한다. 그런 환경에서 산다고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쉽게 얘기한다. '출생지, 개미지옥' 이란 제목이 얼마나 직관적인지. 말 그대로 그들의 삶은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마치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 길을 벗어나기보단 그 길로 들어서는 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그런 삶이다. 부모에게조차 짐짝 취급 당하는 아이들과 그런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 아이가 죽어도 아무 감정을 못 느끼는 부모, 또 그런 아이를 보며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모. 그런 세계가 계속되고 계속되는 것.

기발한 트릭이나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자극 같은 걸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결말이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지만, 뒤통수를 마구 때린다거나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다거나 '충격의 마지막 한 페이지' , '모든 걸 뒤엎는 마지막 0글자'라고 소개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대물림되는 빈곤, 우리 시대에 항상 존재하는 취약계층에 대해서 묵직하게 전달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다. 사건 그 자체보다도 사건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확실해서 좋았고 다 읽었을 때 가슴에 묵직함이 남는 그런 책이라고 말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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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약국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1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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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PIN 에세이 001


그러고 보면 도시엔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다. p.112


현대문학에서 시와 소설에 이어 에세이 핀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작품은 김희선 작가의 <밤의 약국>이다. 작가의 책을 난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읽는 동안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는데도 작가의 색깔이 잔뜩 묻어나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약대에 다니던 이야기, 또 약사로 일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어떤 글은 엉뚱하고, 어떤 글은 귀여운 판타지 동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동물에 대한 온정 어린 시선이 책 전체에 느껴진다.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분 같다. 실제로 백과사전과 각종 도감을 무척 좋아하시는 듯하고.) 인간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약국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별것 아닌 채로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한 편, 한 편이 모여 책이 되었다.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엔 분명 다정함과 염려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약국을 다녀간 할머니들이나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뇌싱, 뇌신, 뇌-신」, 춤 추길 좋아하던 박스맨 이야기 「어떤 사람」이 가슴에 남는다. 또 하나 재밌게 느꼈던 것은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언젠가 쓰리라고 마음먹은, 그러니까 언젠가는 쓰게 될 무수한 이야기들의 소재일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작가의 이야기 수첩을 들여다본 기분.


내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약국>보다는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이미지가 훨씬 더 따스하다. 캄캄한 군청색 밤중에도 작가의 다정함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그런 밤의 약국.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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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소설이란 자신의 과거에 보내는 불가능한 작별 인사"라고. 나는 거기에 두어 마디를 덧붙이고 몇 마디를 뺀 다음,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세상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불가능한 작별 인사"가 있다고. 만약 진정한 작별 인사가 가능하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삼천 배쯤은 가벼워질 거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이루지 못한 인사들은 점점 더 쌓여만 간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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