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김보람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채화 질감이 은은해서 너무 예쁜 앤 모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은 1955년에 출간된 책으로 당시 80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뽑혔다고 한다. 이번에 북포레스트에서 새로이 출간되어 읽어봤는데 흥미로운 점이 많은 책이었다. 중년의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문제를 해소해 보고자 한적한 바닷가에서 2주간의 휴가를 보내며 삶과 인간관계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목차에 있는 소라고둥, 달고둥, 해돋이조개, 굴, 아르고노트와 같은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조개와 인간 삶의 여러 시기를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 이 책이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그렇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이해가 된다. 그 당시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금의 여성의 삶과 사회참여도가 그 당시와는 무척 다름에도 지금 읽어도 크게 위화감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룬 것이 많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반대로 아직도 똑같은 문제로 공감한 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작가와 함께,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따라가게 된다. 젊음, 욕망, 내면의 욕구들, 사랑, 부부와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 등, 이 모든 것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내 내면의 중심을 찾아 귀 기울이는 그 시작을 함께 하는 시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메가네>가 떠올랐다. 영화를 볼 때 내가 느꼈던 해방감과 충만함을 말이다. 바쁜 도시의 삶에서 도피하듯 떠나온 주인공이 요론섬 해변에서 홀로 앉아 익숙지 않은 사색에 젖어드는 그 모습이 연상되었고 내내 책과 결이 무척 비슷하다는 느낌을 느꼈다.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오로지 내 생각만 하고 싶을 때 나는 이 영화를 본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보는 것 같다.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나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을 주는 영화다.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영화 <메가네>도 추천하고 싶다.바쁜 도시의 삶에서 도피하듯 떠나온 주인공이 요론섬 해변에서 홀로 앉아 익숙지 않은 사색에 젖어드는 그 모습이 연상되었고 내내 책과 결이 무척 비슷하다는 느낌을 느꼈다.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오로지 내 생각만 하고 싶을 때 나는 이 영화를 본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보는 것 같다.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나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을 주는 영화다.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영화 <메가네>도 추천하고 싶다.

또 흥미로운 것은 책날개의 작가 소개였다. 도저히 검색을 해보지 않고는 못 베긴다. 조금 알아보니 작가가 이 책을 쓴 마음이나 상황이 이해가 되었고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문제를 개선해 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 도서지원

* 인스타그램 - @morning.bookstore


참 기묘한 역설이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베풀고 싶어 하지만, 조각조각 쪼개져 희생하기는 싫어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인 것일까? 아니면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까? 내 생각에 여성이 싫어하는 것은 지나친 헌신이 아니라 무의미한 헌신이다.
- P52

아름다운 해돋이 조개는 연약하고 덧없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냉소적인 함정에 빠져 이를 환영이라고 부르지는 말자. 지속성은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잠자리와 누에나방의 생애 주기가 짧다고 해서 이들의 낮과 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의미가 있고 없고는 시간, 기간, 지속성과 무관하다.
- P84

그러니까 인생의 오전이라고 볼 수 있는 청춘의 야성적이고 육체적이었던 삶은 이제 끝났다. 그러나 여전히 오후의 시간이 존재한다. 오전처럼 열정적으로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동안 열띤 경주를 하느라 뒷전이었던 지적, 문화적, 정신적 활동을 하는 시간을 드디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젊음, 활동, 물질적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한 우리는 노년이 결코 닥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인생의 오후를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 P96

성은 오로지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온전해져야 한다. ‘고독한 두 사람‘이라는 관계의 서막으로서, 여성은 릴케의 말마따나 ‘상대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되어야 한다.
- P108

리의 감정과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 본 ‘참된 삶‘도 단속적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도 상대방을 매 순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이런 사랑을 바란다. 삶도 사랑도 관계도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다는 것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길, 존속하길, 영원히 지속하기를 고집스럽게 바란다.
- P121

수집가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걷기 때문에 목표물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소유욕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진정한 안목과 양립할 수 없다. 호주머니가 축축하게 젖어 늘어지고, 책장이 가득 차고, 창문 선반까지 뒤덮이자 나는 결국 소유욕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고 날이 서있고 불안하고 어쩔 줄 모른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방인이 또 다른 이방인에게도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모순적이고도 혼돈스러운 모습이 날카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광 - 렌조 미키히코 (양윤옥 옮김)

이런 작가가 있는데 어떻게 미스터리를 쓸 수 있겠는가.

- 다나카 요시키(은하 영웅 전설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한 말이 기대감을 높이는 이 소설은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소설인데 이번에 모모에서 재출간되었다. 처음엔 표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후에 보니 소설의 일부분이 연상되는 표지였다. 굵직 굵직한 상을 많이 받은 작가인데다 반전이 묘미인 책이라고 하니 엄청 기대됐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당한다. 과연 누가, 왜 죽였을까, 이 집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돌아가며 나오고 저마다 동기가 있어 보이는데 뭔가 불안하고 갑갑한 이 집안에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다. 추리 범죄 소설이라 가뜩이나 내용을 오픈할 수 없는데, 반전이 묘미인 책이니 더 리뷰하기 어렵다. 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책은,

옜다, 범인! (에이, 벌써?)

그럴 리가 있나! 옜다 진짜 범인! (진.. 짜?)

무슨 소리!! 여기 있잖아, 진짜 범인! (허얼.. 맙소사...)

아직 안 끝났지~ 옜다!! 범인! (거.. 거짓말! 사실은 이 사람 아니지?)

맞는데? (맞다고? 뭔가 찜찜..)

사실 아니지롱~ (허얼!!!!!)


뭐 이런 느낌으로 진행된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인물들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고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정말 엉망진창인 가족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각 인물들의 감정선이 굉장히 섬세하다.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화자가 바뀔 때마다 마치 서로를 다 안다는 듯한 인물들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사실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인물들의 헛된 관계. 그렇게 이 사람이 범인인가 하는 순간 반전, 또 반전이 거듭된다. 비단 반전뿐 아니라 이런 인물들의 촘촘한 관계나 감정선이 내 취향이었다. 요즘 책 빨리 안 읽어지는데 이건 책 도착하자마자 그날 다 읽어버렸다. 이런 책은 어떻게 쓰는 거지? 후아. 작가의 다른 책들도 궁금하다. 거기다 양윤옥님 번역 무한 신뢰!!!! 넘나 매끄러운 것.

거듭되는 반전이 묘미인 책인 만큼 결말의 반전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이벤트 어디서 봤다 했더니 얼마 전 <소문> 책으로 동일한 이벤트를 진행했던 기억이 났다! 같은 출판사인 만큼 이번에도 환불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하니 그냥 읽어보는 게 좋겠다~


* 도서지원

일흔이 되고 처음 한동안은 죽음이 주춤주춤 다가와 해가 갈수록 성가신 물건처럼 자꾸 들러붙는다 했더니만 최근 일이 년 사이에는 또 다른 나 자신이나 친한 친구처럼 내 몸속에 들어앉아 아예 일상이 되어버렸다.
- P8

내 나이가 되면 타인은, 아니, 나 자신도 유리창 너머의 풍경처럼 보이는 법이야.
- P79

인생은 간단한 것이고 운명은 용기를 내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미는 자에게 언제나 선량하다.
- P175

내가 그 집에서 저지른 행동을 빼고는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잠시 멈춰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 나만은 잔인한 살인범으로 변해버렸는데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게 기가 막히기도 하고... 집 안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게, 아무런 변화도 없는 이 세상에 내가 침입자로 끼어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P180

사건이 터진 그 목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최고기온이 갱신될 만큼 무더운 날씨였다. 여름 햇빛은 자신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져 집과 정원에 하얀 단내를 쏟아냈다.
- 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gatha Christie Editor's Choice

나일강의 죽음 [death on the nile] - 애거서 크리스티

애거서 크리스티를 책으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이 워낙 많기도 하고 잔혹한 현대물에 익숙한 내가 고전 추리물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도 영화로 보았을 뿐이다. <나일강의 죽음> 영화 개봉에 맞춰 동명의 책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고전 읽기에 앞서 걱정을 조금 했더니 어릴 때부터 애거서 크리스티 팬인 내 친구가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올 텐데 그 인물 정리만 잘 되면 몰입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하긴, 초반 몰입에 있어 그건 불문율 같은 거지. 아, 찾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나일강의 죽음은 작가가 남편의 외도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던 중에 쓰였고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뭐지, 갑자기 너무 흥미로워.

/ 청춘을 행복한 때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청춘이란 일생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때가 아닌가! │ p.29

나일강 위의 유람선을 배경으로 많은 승객들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인물 '리넷 리지웨이'는 영국에서 가장 돈 많고 예쁘고 총명한 여인이다. 영화에서 갤 가돗이 연기하는 리넷은 도일이라는 남성과 결혼하여 신혼여행으로 이 유람선에 타게 된다. 이 행복해야 마땅할 신혼여행에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계속 자신들을 쫓아다니며 위협하는 리넷의 친구 자클린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넷의 남편 도일은 바로 얼마전까지 친구 자클린의 약혼자였기 때문이다. 자클린을 연기하는 에마 매키는 내가 좋아하는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터라 너무 기대된다.

/ 사람들은 사랑이 모든 것을 정당화시킨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세. │ p.471

그러던 중 리넷이 살해당한다. 승객 중에는 이들과 별로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는 인물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저런 이유로 동기가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과연, 누굴까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사실 현대물은 사건 자체의 잔혹성이 많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누가 범인일까? 생각하며 읽는 재미는 별로 없다.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아서 어지간하면 나는 초반에 눈치를 채는 편이라, 범인을 추리하기보다는 어떤 이유로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나는 솔직히 진범을 일찌감치 제외했었다. 현대물을 읽으며 나름 습득한 법칙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포가 될 수 있어 쓰지않지만, 아무튼 뒤통수 맞았다. 그래서 다 읽었을 때는 고리타분하기는커녕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이 많으면 당연히 이야기도 많아지는 법이고 그러다 보면 개연성과 같은 부분에서 어설퍼질 수도 있을텐데..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작가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니구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요즘 다들 애거서 크리스티 읽는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 있던 책들이 다 대출 중이더라. 푸아로 시리즈도 궁금하지만 미스 마플 시리즈도 궁금하다. 베스트 시리즈 중에 두 권 겨우 대출할 수 있었다.




​* 인스타그램 - @morning.bookstore

* 도서지원


자존심이나 품위가 말입니다, 마담, 전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죠. 다른 것, 좀 더 강한 감정이 있을 때는 말입니다. - P89

나는 전문적인 고고학 탐사를 떠난 적이 있네. 거기서 배운 게 하나 있지. 발굴하는 동안 무엇인가가 땅에서 나오면, 그 주위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네. 푸석푸석한 흙을 제거하고 칼로 여기저기를 긁어내면 마침내 물건의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네. 혼동을 일으키는 관련 없는 것들이 깡그리 제거되어 스케치나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되는 걸세.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게 그런 걸세. 진실, 완전히 드러나 빛나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지. - P4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좋았다.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서 배깔고 누워 어른들의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작가 생전에 쓴 에세이들 중에 35편을 추려낸 책이다. 몇몇 글은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이기도 했다. 난 이 책이 좋았던 게 참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을 안 읽어봤더라도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작가 '박완서'가 아니라 한 인간 '박완서'의 냄새가 나는 글들이었다. 누군가의 딸이자 손녀,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였고 자신의 편견과 인색함을 부끄러워하고, 여자라서 겪는 수모에 억울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 나이듦에 당황해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 살다가는 한 인생을 어떻게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좋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좋아서 많이 울컥했다. <행복하게 사는 법>, <내 식의 귀향>,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마음 붙일 곳> 글이 참 좋아서 별도로 표시해뒀다.  페이지를 다 넘기고,


1931.10.20 ~ 2011.01.22 


를 보았을 때 그 감정은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의 생은 그가 소망한대로였을까?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갔을 때  쓴 글이 참 좋아서 남겨본다.



정 회장은 정 회장답게 고향에 갔지만 나는 내 식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  p.256「내 식의 귀향」



가을이 오면 겨울을 날 연탄 걱정을 하느라 순수하게 가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마지막 글 <그 때가 가을이었으면> 중 마지막 부분을 남겨본다. (내가 가을을 제일 좋아해서인지 가슴이 찌르르 했다.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여기저기 허둥대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아름다운 것을 봐두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탐욕이다. 탐욕은 추하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고 싶다.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 오는 사람으로서도 아니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도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사랑하고 싶다. 태초의 남녀 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과연 내 생애에서 허락될까. 허락된다면 그때는 언제쯤일까. 10년 후 쯤이 될까, 20년 후쯤이 될까, 몇 년 후라도 좋으니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싶다. 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 |  p.286 「그 때가 가을이었으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