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평점 :

모두 이 하늘 어딘가에 적혀 있는 인권이니 정의니 하는 것을 섬기면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있다고 가정한 걸 섬기면서 살아가면 돼요. 하지만 하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정의나 인권이,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이 없는 세상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요.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걸 존재한다고 믿고 섬기는 일을 사랑이라고도 하지만 기만이라고도 하죠. p.490
스에오의 엄마는 스낵바에서 일하며 단골 손님을 상대로 성매매를 해 겨우 생활을 꾸려간다. 어린아이가 받아야 할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상가에서 음식을 훔쳐 겨우 살아간다. 생활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는데 갑자기 여동생이 생겼다. 사는 것은 더 어려워졌고 엄마도 사라졌지만 여동생만은 지켰다. 이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동생만은 평범한 세상으로 밀어 넣고 싶었다. 어렵게 빚을 갚으면 또 다른 빚이 생겼고 이제 좀 살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추락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의지만으로 이 시궁창 같은 세상의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기베 미치코는 프런티어의 기자다. 성매매 여성 살해 사건과 기업의 협박 사건을 연관성을 쫓다 도달하게 되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이 시리즈는 기베 미치코를 내세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주 캐릭터가 기자인 만큼 사회 문제, 자극만을 쫓는 언론의 행태를 잘 보여준다. 사회파 소설이라고는 해도 위트라고는 없는 캐릭터에 크게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직업의식과 끈질기고도 우직하게 취재를 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기베 미치코의 매력이구나 생각했다. 중간 부분에서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후반이 좋았다. 특히 스에오가 살아온 환경, 그러니까 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한 이해가 무척 날카로웠다. 우리는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너무 쉽게 얘기하곤 한다. 그런 환경에서 산다고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쉽게 얘기한다. '출생지, 개미지옥' 이란 제목이 얼마나 직관적인지. 말 그대로 그들의 삶은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마치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 길을 벗어나기보단 그 길로 들어서는 게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그런 삶이다. 부모에게조차 짐짝 취급 당하는 아이들과 그런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 아이가 죽어도 아무 감정을 못 느끼는 부모, 또 그런 아이를 보며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모. 그런 세계가 계속되고 계속되는 것.
기발한 트릭이나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자극 같은 걸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결말이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지만, 뒤통수를 마구 때린다거나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다거나 '충격의 마지막 한 페이지' , '모든 걸 뒤엎는 마지막 0글자'라고 소개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대물림되는 빈곤, 우리 시대에 항상 존재하는 취약계층에 대해서 묵직하게 전달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다. 사건 그 자체보다도 사건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확실해서 좋았고 다 읽었을 때 가슴에 묵직함이 남는 그런 책이라고 말이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morning.book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