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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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향인인 작가가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상황에서 조금은 더 보장된 개인적인 일상들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지난 2년여의 시간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나도 내향형 인간이다. mbti를 어떻게 해도 항상 infp 가 나오는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완전히 외향형 인간이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 점점 내향형 인간이 된 경우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쓸 수 있는 외향성 수치라는 게 있다면 난 아마 분명 어릴 때 다 써버린 거다. 지금도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어른들과도 서슴없이 지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나를 외향형 인간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서 내향형이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외향적인 활동을 한 이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원기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과 신나게 교류를 했다 치면, 낯가림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니 다른 사람들은 꼭 다음을 약속하려고 한다. 난 그다음을 미리 약속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지금은 나도 즐거운데 나중엔 집에서 나오기 싫을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한 3일은 집순이 확정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작가의 글들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정도의 차이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말이다.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와 다르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이해해 보려고 상상해 보는 것. 참 재밌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어느 정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의 집단행동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게 계속될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어떤 '상황' 과 별개로 집단적인 행동이든 개인적인 행동이든 그냥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밥 먹는 것과, 여럿이 밥을 먹는 것. 그게 대체 뭐가 중요한가. 같이 먹다가도 혼자 먹고 싶은 날이 있을 수 있고 그런거지. 그걸 그냥 존중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면 참 좋겠다. 뭐 대단한 일을 얘기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냥 밥 먹는 거니까.


* 하니포터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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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뭐가 됐든, 사라지는 사람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해독제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일과의 한복판에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든 사람들이다.
- P19

핫플레이스나 배달 어플은 확실히 욕망을 팽창시킨다. 매우 즉각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그러나 사실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낳는다. 그러나 단골집은 그렇지 않다. 지근거리에 있고 별스럽지 않은 메뉴를 팔며 언제 찾아가도 새로울 것이 없는 단골집은 욕망을 부추기기보다는 일상을 다스리고 하루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동네 카페, 동네 술집, 동네 밥집과 빵집이 소중한 이유다.
- P82

나는 여전히 이메일을 아끼고 또 아낀다. 다소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 P108

그가 좋아하는 것과 견디지 못하는 것, 자잘한 일상의 규칙들과 한편에 마련해둔 자유, 소중하게 돌보고 있는 것들과 어쩔 수 없어 방치하고 있는 것들, 그 사이사이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는 좀 더 잘 살기 위한 노력과 체념의 흔적들. 집주인은 이 모든 것을 나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P129

도무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밖에 없고, 내가 구축한 질서 안에서 안심하고 늘어져 있는 것처럼 실체가 분명한 행복도 없기 때문이다.
- P130

농담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재치 있는 말로 돋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멈춰야 할 때 꼭 한 발 더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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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 '아무 몸'으로 살아갈 권리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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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몸'으로 살아갈 권리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 껍데기의 몸, 병든 몸, 나이 든 몸, 인종이 다른 몸, 장애가 있는 몸 등 몸의 다양한 상황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가, 또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차별하는 자가 되는가. 인간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 같겠지만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성격만큼이나 다른 몸을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이다. 어차피 다 같이 늙어가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는 데 뭘 그리 조금 다르다고 이해 못하고 차별하나. 대놓고 차별적 발언을 내던지지 않더라도 은근히 내적으로 나와 타인을 가르는 선을 긋고 보는 시선을 누구나 자신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그래본 적 없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미안하지만 안 믿는다.

저자는 냉소를 바탕으로 유쾌하게 글로 풀어나가고 있지만 그만큼 감정적이기도 하다. 화를 내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는 모습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압사당하는 수컷 병아리들이나 뜬장 위의 개들 때문에 울며불며 채식주의자를 마음먹지만 내심 고기를 먹을 기회를 기다리는 인간적인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불안함이나 오로지 스스로에게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당연하고도 고된 삶에 대한 걱정에 공감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몸의 '불편함'에 대해서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차별적 시선이나 무관심 또는 몰이해 속에서 생존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도 늘 잊고 산다. 읽는 동안 내가 살면서 경험해 본 많은 차별적 시선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전혀 새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내가 타인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상황들이 많았다는 걸 느낀 게 무척 새로웠다.



* 하니포터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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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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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얻고서 후회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후회할 인간에게만 주기 때문이에요.

│p.148

 


삶을 포기하려던 아이바, 그의 앞에 사신이 나타난다. 어차피 사는 것에 미련이 없기에 수명을 내어주기로 하고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은시계를 얻는 거래를 한다. 이제 아이바에게 남은 시간은 3년이다. 돈도 벌어보고 이것저것 해보지만 결국 아이바는 자신처럼 매일매일 죽기를 원하는 한 소녀를 살리는 것에 몰두한다. 몇십 번의 자살을 막으면서 아이바는 소녀 이치노세와 가까워지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게 된다. 이치노세는 아이바로 인해 상처를 안고도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고 그러는 사이 아이바의 수명은 다해간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치노세와의 관계를 억지로 끊어내고 그녀가 모르게 자살로 생을 끝내려 하는데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이치노세가 나타난다. 뭘까...? 이후의 이야기는 책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재미는 남겨놔야지.



인터넷 소설 대상작이라길래 궁금해서 읽어보게 됐다. 은근히 머리를 많이 써야 되기 때문에 평소에 타임슬립물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타임슬립물이란 장르 자체가 다소 진부한 스토리를 예상하게 하지만 매일매일 삶을 포기할 정도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건 역시 좋은 것 같다. 가끔 이런 따뜻한 거 좋잖아. 마지막이 그저 후회화 슬픔으로 끝날까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마음 편하게 덮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신은 전혀 무섭지 않다. 아무래도 진짜 큐피드가 맞는 것 같다. 사실 이야기 자체보다 이후의 이들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 도서지원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그날은 너무나 화창했다. 하늘이 놀랄 만큼 푸르렀다. 만약 스스로 죽을 날을 정할 수 있다면 나는 이런 날을 선택하겠다. - P11

나는 수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손에 넣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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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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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령은 자기가 유령인지 몰라.

유령은 죽은 사람이잖아요. 저는 살아 있는데요.

산 사람도 유령이 될 수 있어. │p.20

수험생, 취준생, 직장'생'으로 당연하고도 익숙한 '생'을 살던 '영'은 20대에 정리해고당하고 위기감에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과는 무관한 플라워 약국에 전산원으로 취직한다. 김약사와 조부장에게 약국 업무를 배워가는 과정, 또 약국을 오가는 단골손님들의 모습까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야기여서 신선했다. 약국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나 조와 김약사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기보다는 아주 조용하게, 영에게만 집중하여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려 한다면 분명 괜찮은 포인트들이 있었고 그랬다면 '불편한 편의점'의 약국 버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에피소드가 생길만하면 전개를 멈춘다. 1이 되기 위해 움츠리고 있는 영에게만 정성스레 집중하는 작가가 보였다. 영은 이야기의 주인공 '영'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1이 되기 위해 잠깐 움츠리고 있는 0이기도 하다. 불안과 무기력에 흔들리며 존재감 없이 살아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靈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무기력한 영과 삶에서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한 후 다시 약국에서 일하게 된 조, 남편에게서 분리된 이후에야 제대로 살게 된 김약사의 어머니까지 죽은 사람을 뜻하는 유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더없이 절묘한 걸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유령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요즘은 유령인 것 같아.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p.246 작가의 말

0은 외로워 보인다. 불안하고 명확하지 못하다. 어떨 땐 0만 남고, 또 어떨 땐 0은 사라진다. 그래서 무해하거나 유해해 보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더 이상 0이 아니게 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어렵고 피곤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가며 사는 것이 사람이듯 비록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0'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0은 예비 '1'이다. 선명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무수한 픽셀 중의 하나.



* 하니포터 3기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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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까지 쌓아온 것들을 전부 ‘무관‘하게 만드는 선택을 해도 되는 걸까.
- P10

나는 부식된 면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자리에 머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자리를 옮겨 앉는 순간 어긋난 틈을 메우지 못한 채 자꾸 벌어지기만 했다.
- P130

하나의 세상에서 제거되어 부재자가 되는 경험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 P133

한때는 어머니와 같은 나라의 주민이라고 생각했다. 귀담아듣고 연민했으며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었다. 몇 년쯤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은 뒤에야 어머니에게 딸이란 약국에서 구입하기 쉬운 약과 같다는 걸 알았다. 수시로 복용해도 병세의 원인이 다른 데 있었기에 차도는 없었다. 그저 진통제에 불과했던 약의 역할을 거부했더니 어머니의 한탄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 P135

해일처럼 넘어오는 정보에 발이 젖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선택하는 과정은 젖은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는 일과 비슷했다. 멈추기 전에는 발을 말릴 수 없었다.
- P163

조에 비해 내가 겪는 비극은 흔하디흔하고 산개되어 있었다. 하나씩 짚어 말하면 평범한 일상으로 보인다는 점이 비극이었다. (...) 나는 달라졌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서른이라는 섬에 얼마나 지쳐서 도달했던가. 유령이 되는 건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 실패하는 과정이었다.
- P218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편협해지고 멀어질수록 공평해진다. 친절에 대한 보답은 그러므로 역시 친절뿐이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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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노래하듯이
오하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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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읽는 동안 진짜 좋았다. 뭔가 진부한 말이지만 힐링 되는 그런 느낌. 할머니가 입원하시게 되어 속이 시끄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하나 시인이 제주 생활을 들려주는 책인데 이렇게 말하면 흔한 제주살이 책 같지만 그렇지 않다. 1월 소한부터 12월 동지까지 귤 나무를 돌보며 계절이 흐르고 변하는 모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자연적이다. 제주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풍경을 눈에 담을 순 없을 것 같다. 또 같은 풍경을 본다 한들 똑같이 쓸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사 책 소개를 보면 '세밀화를 그리듯'이라는 표현이 적혀있는데 정말 그랬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철새들, 곤충들, 그리고 귤 나무의 변화들, 소복소복 흰 눈들. 읽는 동안 정말 흙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눈을 밟는 것 같았고 멧비둘기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풋귤의 새큼함을 상상하자 혀 양쪽에서 침이 고였다. 벌레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귤 나무를 돌보는 일, 상상하기 힘든 그 정성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 이토록 자연 속에 머물다 온 기분이 들 수 있다니. 정말 좋았다.


* 그런데 돌아온 멧비둘기는 정말로 바비일까? 정말로? ㅠㅠ

* 풋귤로 만든 소금 다대기 정말 먹어보고 싶다. 얼마나 상큼한 향이 날까. 생선에 얹어먹거나 소면에 얹어서 먹는다고 하는데 진짜 너무 환상적일 것 같다.


* 도서지원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춘분이 지난 제주는 갖가지 봄꽃이 산에 들에 피어나서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어디서나 꽃꿀 향기가 흘러 다닌다. 눈 두는 데마다 유채꽃이, 벚꽃이 만발했다. 아득해져서 그만 눈을 감으면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노란 잔상과 연분홍 잔상이 남는다.

우리가 꽃을 보면서 금방 피었네, 그새 졌네, 말하는 건 꽃들이 빨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루 중 대부분 딴생각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며 일으키는 계절과 바람의 리듬에 맞춰서 세세하게 움직이는 만물의 순간을 포착하며 제가 얻은 건 밝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유는 자연이 늘 환하고 다정해서가 아니라 때론 매섭고 생명을 앗아갈만큼 가차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진실한 데 있는 듯합니다.

삶은 주어진 것이지만 유한함 속에 내가 선택하고 지켜낼 것들이 있다는 걸 난 이제야 배워가는 것 같아. 언제든 생각지도 못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절망이지만 또 희망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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