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노래하듯이
오하나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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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읽는 동안 진짜 좋았다. 뭔가 진부한 말이지만 힐링 되는 그런 느낌. 할머니가 입원하시게 되어 속이 시끄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하나 시인이 제주 생활을 들려주는 책인데 이렇게 말하면 흔한 제주살이 책 같지만 그렇지 않다. 1월 소한부터 12월 동지까지 귤 나무를 돌보며 계절이 흐르고 변하는 모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자연적이다. 제주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풍경을 눈에 담을 순 없을 것 같다. 또 같은 풍경을 본다 한들 똑같이 쓸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사 책 소개를 보면 '세밀화를 그리듯'이라는 표현이 적혀있는데 정말 그랬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철새들, 곤충들, 그리고 귤 나무의 변화들, 소복소복 흰 눈들. 읽는 동안 정말 흙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눈을 밟는 것 같았고 멧비둘기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풋귤의 새큼함을 상상하자 혀 양쪽에서 침이 고였다. 벌레들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귤 나무를 돌보는 일, 상상하기 힘든 그 정성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 이토록 자연 속에 머물다 온 기분이 들 수 있다니. 정말 좋았다.


* 그런데 돌아온 멧비둘기는 정말로 바비일까? 정말로? ㅠㅠ

* 풋귤로 만든 소금 다대기 정말 먹어보고 싶다. 얼마나 상큼한 향이 날까. 생선에 얹어먹거나 소면에 얹어서 먹는다고 하는데 진짜 너무 환상적일 것 같다.


* 도서지원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춘분이 지난 제주는 갖가지 봄꽃이 산에 들에 피어나서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어디서나 꽃꿀 향기가 흘러 다닌다. 눈 두는 데마다 유채꽃이, 벚꽃이 만발했다. 아득해져서 그만 눈을 감으면 파란 하늘에 대비되는 노란 잔상과 연분홍 잔상이 남는다.

우리가 꽃을 보면서 금방 피었네, 그새 졌네, 말하는 건 꽃들이 빨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루 중 대부분 딴생각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며 일으키는 계절과 바람의 리듬에 맞춰서 세세하게 움직이는 만물의 순간을 포착하며 제가 얻은 건 밝은 마음이었습니다. 이유는 자연이 늘 환하고 다정해서가 아니라 때론 매섭고 생명을 앗아갈만큼 가차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진실한 데 있는 듯합니다.

삶은 주어진 것이지만 유한함 속에 내가 선택하고 지켜낼 것들이 있다는 걸 난 이제야 배워가는 것 같아. 언제든 생각지도 못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절망이지만 또 희망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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