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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섬에 있는 서점>을 읽고 너무 좋아하게 된 작가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이후 언제쯤 새로운 작품을 읽어볼 수 있으려나 했기에 이번 신작 소식이 너무 반가웠다. 두께감이 좀 있는 책이라 빨리 시작했는데 막상 다 읽었을 때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계속 읽고 싶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린 내가 싫었다. 자연스러운 대화체, 반짝이면서도 착착 감기는 문장의 맛, 캐릭터성,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섬에 있는 서점>을 읽고 너무 좋아하게 된 작가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이후 언제쯤 새로운 작품을 읽어볼 수 있으려나 했기에 이번 신작 소식이 너무 반가웠다. 두께감이 좀 있는 책이라 빨리 시작했는데 막상 다 읽었을 때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계속 읽고 싶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린 내가 싫었다. 자연스러운 대화체, 반짝이면서도 착착 감기는 문장의 맛, 캐릭터성,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게임이 뭐겠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잖아.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 Ι p.540
샘과 세이디는 각자의 이유로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의 휴게실에서 소년 소녀는 처음 만나 마리오 게임을 하면서 친해지게 되고 이후에도 여러 게임을 하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어떤 오해로 인해 샘은 상처받고 세이디에게 절교선언을 했다. 시간이 흘러 샘은 하버드에서, 세이디는 MIT에서 공부하게 됐고 어느 날 하버드 스퀘어 매직아이 광고판 앞에서 재회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이디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고 샘 역시 여전히 게임을 좋아해서 세이디의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동참해 함께 게임 제작을 하게 된다. 이 둘 사이의 중재자로 샘의 친구 마크스가 합세하면서 세 청춘들의 우정과 열정, 고민, 질투, 오해들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매직아이, 슈퍼마리오, 닌텐도, 동키콩, 다마고치 같은 추억의 게임들이 많이 나와서 정겹다. 게임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잘 몰라도 충분히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앓아 온 신체적인 고통과 한계로 인해 샘은 자신의 이상이 담긴 게임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몰두하는데 이해가 돼서 더 빠져들었다. 그들이 만든 '이치고'란 게임은 해보고 싶을 정도. 또 세이디가 그 시대 여성 게임 디자이너로서 느꼈을 차별적 시선 때문에 샘과 자신의 훌륭한 상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게임을 고집하는데 무척 현실적이었다. 대중적 성공과 예술적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도 좋았고 훌륭한 게임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교수인 도브와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마크스에 대해서는 스포가 되는 것 같아서 쓸 수는 없지만 마크스로 인해 많이 슬펐고 결국은 훌쩍훌쩍하면서 후반부를 읽었다. 이 책은 사랑이 가득하지만 흔한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전엔 몰랐는데 작가가 한국계 어머니와 유대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소설의 세계에서 샘이 바로 그러하다. (한국인 이민 1세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피자 동&봉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안전하게 속하지 못한 채 외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혼혈 '애나 리'들의 삶도 놓칠 수 없다. 자살한 여인 '애나 리'와 싱글 맘이자 배우로서 살아가려고 고군분투하던 샘의 엄마 '애나 리'(대타로 뽑힌 방송의 전임자의 이름도 '애나 리') , 마크스의 엄마는 일본계 미국인인 애나 리.(마크스가 친구 샘에게 그렇게도 헌신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ㅠㅠ) 마크스의 엄마는 자신의 본명이 애란이라고 했는데 실제 작가의 어머니 이름이라고 한다.
살면서 대체로 샘은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그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로 보였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일단 누군가를 사랑하면, 듣기 지겨워질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 말이 의미가 닳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말한다. 안 그럴 이유가 있는가? Ι p.615
이 소설 속에서 샘은 지치지도 않고 세이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너무 귀엽고 좋았다. 파트너를 읽고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세이디를 구하기 위해 세이디가 좋아하는 <오리건 트레일> 과 비슷한 게임을 만들었던 샘. 그 게임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파트는 무척 독창적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훌륭한 파트너이면서도 자주 오해하고 자주 싸웠다. 생각해 보니 그런 그들에게 마크스는 '봄날의 햇살'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살펴주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진심 어린 존재. '마크스가 마크스였기 때문에 샘과 세이디는 샘과 세이디일 수 있었다.' (p.501)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책이 끝날 때 책이 끝난다는 아쉬움만큼 마크스가 그리웠다. 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뜨겁고, 슬픈 이야기를 다들 읽어봤으면 한다. 아, 그리고 히라노 게이치로와 양윤옥 번역가의 조합만큼 개브리얼 제빈과 엄일녀 번역가의 조합도 너무나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표지도 읽고나서 보니 딱 이 소설 그대로다.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고작 두시간으로 괜찮을까? 미니시리즈 형태로 드라마면 좋을텐데.
* 도서지원
* 아침서가 @morning.bookstore
실력이 훌쩍 도약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이기심과 원한과 불안으로 똘똘 뭉친 독종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이디는 비범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의지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행복한 사람들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 P604
하여간 나는 그쪽 세계가 더 좋아요. 완벽해질 수 있으니까. 내가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현실 세계는 마구잡이식 재난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잖아요. 늘 그렇죠. 현실 세계의 코드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젠장 하나도 없잖아. - P532
마크스가 마크스였기 때문에 샘과 세이디는 샘과 세이디일 수 있었다. - P501
은 O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으로도 똑똑히 보였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상의 기초적인 오류였고, 샘은 머리 뚜껑을 열고 두뇌를 꺼내서 그 불량 코드를 삭제하고 싶었다. 불행히도, 인간의 두뇌는 애플의 맥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폐쇄적인 시스템이었다. - P306
마크스는 독서량이 어마어마한 독서가였고, 그에게 세이디는 마치 여러 번 읽어도 좋은 책, 항상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오는 책 같았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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