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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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찬의 가슴 언저리 위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동그란 공이라도 잡은 듯 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게 사과라도 된다는 듯 한 입 베어 먹는 시늉을 했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뭐?) 네 가슴에서 자꾸만 널 괴롭히는 그 못되고 뜨거운 여름을 내가 콱 먹었다고. 이제 안 뜨거울 거야. 괴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야. 두고 봐. Ι p.186


조용히 제목을 읽어보았다. 여름이 마치 사과라도 되는 듯 한 입 베어 물었다는 제목 때문인지 청사과의 풋내가 나는 듯했다. 여름의 한가운데 같은 싱그러운 표지를 보니 여름에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지만 생각한 것만큼 달콤하고 싱그럽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조금은 쌉싸름한 이야기라고 할까.


아픔을 가진 두 아이 하지오와 유찬의 이야기다. 하지오는 미혼모인 엄마와 둘이 살아간다. 어느 날 큰 수술을 앞둔 엄마의 결정으로 아빠가 있는 '번영'이라는 동네로 가게 된다. 아빠의 존재도 몰랐다가 난데없이 아빠랑 살게 되니 좋기는커녕 혼란스럽고 미움만 커진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유도를 시작했을 정도로 지오는 엄마를 사랑하므로 엄마를 아프게 한 아빠가 더 미웠던 것이다. 지오는 아빠 네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번영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유찬.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유찬에게는 아무도 믿지 않을 비밀이 있다. 5년 전 화재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혐오하며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며 지낸다. 하지오가 전학 오면서 유찬에게 변화가 생긴다. 이상하게도 지오의 속마음만은 들리지 않을뿐더러 지오가 유찬의 곁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까지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유찬에게 그런 지오는 궁금한 존재다. 알고 싶고, 계속 곁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존재.


번영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유찬과 지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재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조금씩 밝혀진다. 번영 사람들의 끈끈한 결속력이 유찬의 상처를 만들었고, 지오의 상처도 헤집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결속력으로 단단하게 받쳐주고 보듬어주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화재사고와 관련해서는 아프고도 슬픈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지오와 유찬의 슬픔과 분노, 유도부 선배 새별의 사정, 옳지는 않다 해도 최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결정을 해야만 했던 번영 사람들의 투박하고도 정 깊은 이야기에 가슴이 무지근했다. 하지만 아프고 괴로워도 부딪치며 성큼성큼 나아가는 아이들만큼 눈부신 건 없다. 새큼하고 풋풋하지만 찬란한 여름 같은 이야기다. 꼭 쥐고만 있던 상처를 놓아주고 또 서로를 안아줄 줄 아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여름을 보내는 지금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아침서가 - @morning.bookstore


궁금했었어. 그래서 듣고 싶었어, 네 속마음. 그 말 한마디에 지오는 주저앉아 버린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 목 놓아 운다. 가슴을 치며 발을 바닥에 비벼 대며 자꾸만 화가 난다고, 그래서 미치겠다고 그렇게 울어댄다.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저 함께 앉아 있어 준다. 언젠가 내가 그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래 주길 바랐던 것처럼. - P58

어렵고 힘든 것들이 늘 그러하듯 답이 없는 문제는 언제나 가슴을 세게 짓눌렀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채 원망만 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 P128

큰일이다. 이제 매미 소리도 모자라 저 태양만 봐도 지금이 생각날 테니까. 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 P187

혼자인 줄 알았던 이들 곁에 너무도 따뜻한 이들이 언제나 함께였음을 알게 되는, 햇살만큼 반짝이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썼다. 이 이야기가 마음이 닿지 않아 힘들어하는 이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 답답한 이에게 위로가 되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삶이 여름의 햇살만큼 눈부시기를 바란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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