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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부는 바람
크리스틴 해나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평점 :

사방에 부는 바람 (원제 : The Four Winds 2021)
크리스틴 해나
이 이야기는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더스트볼, 먼지모래 폭풍과 끝을 모르는 가뭄으로 인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고 가축도 사람도 먹을 것이 없어 죽어나가는 그런 시대.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읽어 본 것이 처음이라 나는 이 이야기가 마치 SF 재난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먼지모래 폭풍이라니.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먼지모래, 자고 일어나면 온갖 곳에서 먼지모래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몸의 구멍마다 검은 모래가 끼는... 거기다 끝날 줄 모르는 가뭄.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역사였다.
부유한 집안의 첫 딸이지만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한 채 사랑이나 유대감을 모르고 자란 엘사는 자유를 꿈꾼다. 하룻밤의 일탈로 청년 레이프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난 채 마르티넬리가의 가족이 된다. 그곳에서 엘사는 시부모님과 풍요로운 대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두 아이를 낳고 살아가던 중 먼지모래 폭풍과 가뭄으로 인해 상황은 급변한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은행은 문을 닫았으며 키우던 가축들도 몸속에 모래를 가득 남긴 채 죽어간다. 사람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며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농부가 되길 원한 적 없던 남편 레이프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족들을 떠나버렸고, 결국 엘사도 두 아이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었다.
삶의 관건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관건은 바로 두려움 속에서 행하는 선택이었다. 우리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것이 아니라, 두렵기에 용감했다. Ι p.550
이야기는 결국 엘사의 인생 여정이고 그 속에서 발현된 용기와 사랑이다. 주목받지 못한 역사를 배경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쓰길 좋아하는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대공황 시대에서 나아가는 여성의 인생을 그렸다. 시모, 로즈는 엘사가 자신의 가족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엄마의 사랑과 여성 유대의 힘을 가르쳐 주었고 아이들을 낳으면서는 절대 끊어질 수 없는 끈끈한 사랑을 알게 됐다. 언제 생을 포기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로, 노예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으며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을 지켜냈다. 엄마보다는 아버지와 유대감이 깊었던 딸 로레이다와는 여정 내내 대립했는데 이 모녀관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엘사도 결혼하기 전에는 누구보다 자유를 원하는 여성 아니었던가. 그들만 몰랐을 뿐 모녀는 누구보다 가장 비슷한 사람들이었을 거다. 그걸 알기까지의 여정이 너무나 길었다. 아무튼 그런 엘사가 뜻하지 않게 마르티넬리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동안 이제는 그녀의 딸 로레이다가 자유를 갈망한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자유와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는 이유로 레이프와 로레이다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콱 쥐어박고 싶긴 했지만)
상황이 더 낫기를 바라며 떠난 여정 끝에 다다른 캘리포니아의 실상은 끔찍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끝도 없이 몰려들고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줄어들까 봐, 창궐하는 병균들이나 이주민들에 의한 범죄로 인해 해를 입을까 봐, 또 자신들의 세금이 이주민들에게 쓰이는 상황들이 못마땅하다. 현재의 난민 문제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역시 역사는 이어져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생각한다. 부유한 농장주들은 노숙하는 이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이런 농장주들과 대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싸움 속에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엘사와 로레이다는 용기를 낸다. 이 시대가 빨리 끝나길 진심으로 빌면서 읽었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는 훌쩍훌쩍했다. 엘사가 용기를 내면서 가르쳐 준 그 끊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안고 로레이다는 어떤 여성이 될까? 나 역시 작가처럼 로레이다의 이후 인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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