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이 보리를 떠내려 보내다.

   高鳳流麥(고봉유맥)

 

동한 시대 사람인 고봉은 젊은 날부터 독서를 너무 좋아했다. 그의 집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그는 공부를 고집하여 밤낮으로 책에 파묻혀 살았다. 하루는 고봉의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가면서 마당에 말리고 있던 보리를 닭들이 쪼아 먹지 않도록 잘 좀 보라고 당부했다. 고봉은 닭을 쫓는 작대기를 들고 아내의 당부에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아내가 나가자 고봉은 바로 책을 꺼내 들고는 책 속에 빠졌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봉은 닭을 쫓는 작대기를 든 채 책을 읽느라 보리가 빗물에 다 떠내려가는 것도 몰랐다.

보리가 떠내려간다는 뜻의 流麥’(유맥)은 훗날 麥流’(맥류), ‘棄麥’(기맥, 보리를 버리다), ‘ 麥不收’(맥불수, 보리를 거두지 못하다), ‘中庭麥’(중정맥, 뜰의 보리) 등 다양하게 변용되어 마음을 다하여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고봉까지는 못 되더라도 우리 사회에 독서향이 많이 풍겼으면 좋겠다.

 

후한서83 일민전고봉(逸民傳高鳳)

 

 

 

 

중국사의 오늘 :

649112(당 태종 정관 2212월 경오)

대자은사(大慈恩寺)가 완공되었다. 자은사는 당나라 태종 당시 태자 이치가 어머니 장손황후의 복을 빌기 위해 세운 장안 최대 사찰이었다. 이 절의 중심인 탑을 태자은사탑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탑의 모습이 큰기러기 같다고 해서 대안탑’(大雁塔)이라 부른다. 최근 이 절 주위는 불야성(不夜城)이란 문화거리가 형성되어 서안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 도판은 서안의 대자은사탑(오늘날의 대안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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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치는 집, 궁형(宮刑)

   蠶室(잠실)

 

잠실은 말 그대로 누에를 치는 집이나 방이다. 고대의 천자나 제후에게는 반드시 공식적으로 뽕밭이나 잠실이 있었다. 백성의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이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인 궁형을 은유하게 되었다. 특히 사마천이 억울하게 궁형을 당한 후로는 억울한 형벌로 치욕을 당한 처지를 비유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궁형을 당한 죄수는 찬바람이나 찬 기운을 피해야 했고, 누에를 치는 잠실이 따뜻했던 까닭에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역사책을 읽고 지은 다섯 수의 시에서 사마천은 잠실로 보내졌고, 계강(稽康)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고 했다. 감옥에 갇힌다는 뜻의 영어라는 단어가 함께 쓰였다. 사마천도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어라는 단어를 쓴 바 있다. 평범한 단어 잠실에 사마천의 억울함이 짙게 배어 있다.

 

예기(禮記) 제의(祭義),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 하(光武帝紀下)

 

 

 

 

 

 

 

 

 

 

 

 

 

 

 

 

 

 

 

 

 

 

 

 

 

 

 

 

 

 

 

 

 

 

 

* 도판은 옥에 갇히는 사마천을 표현한 그림.

 

 

 

 

 

중국사의 오늘:

1369111(명 태조 홍무 원년 12월 기사)

명 태조 주원장이 조회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서는 궁중의 빈터를 가리키며 태자 주표에게 이곳에다가는 얼마든지 건물을 세울 수 있지만 백성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짓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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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言多必失(언다필실)

 

명나라 때 주백려(朱柏廬)가 펴낸 주자가훈을 보면 처세에는 말 많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청나라 때 서주생(西周生)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 16회에는 말은 신중해야 하고, 행동은 경솔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보인다. 다 말 조심하라는 경고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야 하고, 행동을 할 때는 자기가 한 말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피라고 했다. 이게 바로 언행일치(言行一致). 세상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인지 언행일치가 진부하게조차 들린다. 씁쓸한 세태다.

 

주자가훈(朱子家訓)

 

 

 

 

 

중국사의 오늘 :

1949110

장개석이 아들 장경국을 상해로 보내 중앙은행 현금을 대만으로 옮기게 했다. 장개석은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는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도판은 장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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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정치는 있다는 것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다.

   太上不知有之(태상부지유지)

 

노자가 정치의 경지를 논하면서 최선의 정치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이다음은 백성이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정치(親而譽之(친이예지)), 그다음은 백성을 겁먹게 하는 정치(畏之(외지)), 다음은 미움과 욕을 먹는 정치(侮之(모지))라 했다. 각각 무치(無治, 억지로 일삼지 않는 정치), 덕치(德治, 덕으로 이끄는 정치), 법치(法治, 엄하게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 폭치(暴治, 포악한 정치)라 부를 수 있겠다. 사마천도 사기』 「화식열전에서 정치 수준의 5단계를 언급한 바 있는데, 가장 나쁜 정치를 백성들과 다투는것이라 했다. 노자나 사마천이나 나쁜 정치에 관한 한 생각이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좋은 정치는 그만두고라도 나쁜 정치는 안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자(老子) 17

 

 

 

 

 

 

 

 

 

 

 

 

 

 

 

 

 

 

 

 

 

 

 

 

 

 

 

 

 

 

 

 

 

 

 

 

 

 

* 도판은 중국 마왕퇴에서 발견된 『노자』.

 

 

 

 

 

중국사의 오늘:

57419(북조 북주 무제 건덕 212월 계사)

북주(北周)의 황제 무제(武帝)가 백관 및 승려와 도사를 소집하여 유도 삼교의 선후를 가리도록 했다. 무제는 높은 자리에 앉아 논의를 발의하여 유교, 도교, 불교 순으로 순서를 가렸다. 621일 북주는 불교와 도교의 금지령을 내려 관련 경전과 상들을 모두 없애고 사문과 도사를 환속시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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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군주와 공을 다투면 욕을 당한다.

   事君數, 斯辱矣(사군수, 사욕의)

 

공자(孔子)의 제자 언언(言偃)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다. 이어서 친구와 공을 다투면 사이가 멀어진다는 뜻의 朋友數, 斯疏矣(붕우수, 사소의)”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모시는 군주(리더)와 공을 다투면 틀림없이 군주의 부족한 점을 떠들게 되어 결국은 욕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늘날로 보자면 적절치 않다. 누가 세웠건 모든 공을 군주에게 돌리라는 봉건적이고 수동적인 사유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세우지 않은 공을 가로채거나 남이 세운 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조는 여전하다. 하지만 백성과 다투는 정치가 가장 못난 정치라 했듯이, 부하와 공을 다투는 리더가 가장 못난 리더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구절은 부하가 아닌 리더의 입장에서 되새겨 봐야 한다.

 

수서(隋書) 이악전(李諤傳)

 

 

 

 

 

중국사의 오늘:

142518(명 영락 2212월 경신)

명 왕조의 3대 황제 성조 영락제 주체(朱棣)를 장릉에 장사지냈다. 장릉은 북경 창평 천수산 남쪽 기슭에 있다. 성조 이후 명 황제들은 모두 이곳에 묻혔고, 이곳을 흔히 13이라 부른다. 13릉 중 제13대 황제 신종의 무덤인 정릉이 정식 발굴되어 대외에 공개돼 있다(신종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낸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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