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는 군주와 공을 다투면 욕을 당한다.
事君數, 斯辱矣(사군수, 사욕의)
공자(孔子)의 제자 언언(言偃)의 말을 인용한 대목이다. 이어서 ‘친구와 공을 다투면 사이가 멀어진다’는 뜻의 “朋友數, 斯疏矣(붕우수, 사소의)”란 말이 나온다. 자신이 모시는 군주(리더)와 공을 다투면 틀림없이 군주의 부족한 점을 떠들게 되어 결국은 욕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늘날로 보자면 적절치 않다. 누가 세웠건 모든 공을 군주에게 돌리라는 봉건적이고 수동적인 사유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세우지 않은 공을 가로채거나 남이 세운 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조는 여전하다. 하지만 백성과 다투는 정치가 가장 못난 정치라 했듯이, 부하와 공을 다투는 리더가 가장 못난 리더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구절은 부하가 아닌 리더의 입장에서 되새겨 봐야 한다.
『수서』(隋書) 「이악전」(李諤傳)
중국사의 오늘:
1425년 1월 8일(명 영락 22년 12월 경신)
명 왕조의 3대 황제 성조 영락제 주체(朱棣)를 장릉에 장사지냈다. 장릉은 북경 창평 천수산 남쪽 기슭에 있다. 성조 이후 명 황제들은 모두 이곳에 묻혔고, 이곳을 흔히 ‘명 13릉’이라 부른다. 13릉 중 제13대 황제 신종의 무덤인 정릉이 정식 발굴되어 대외에 공개돼 있다(신종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낸 황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