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치는 집, 궁형(宮刑)
蠶室(잠실)
잠실은 말 그대로 누에를 치는 집이나 방이다. 고대의 천자나 제후에게는 반드시 공식적으로 뽕밭이나 잠실이 있었다. 백성의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이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인 ‘궁형’을 은유하게 되었다. 특히 사마천이 억울하게 궁형을 당한 후로는 억울한 형벌로 치욕을 당한 처지를 비유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궁형을 당한 죄수는 찬바람이나 찬 기운을 피해야 했고, 누에를 치는 잠실이 따뜻했던 까닭에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역사책을 읽고 지은 다섯 수의 시에서 “사마천은 잠실로 보내졌고, 계강(稽康)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고 했다. 감옥에 갇힌다는 뜻의 ‘영어’라는 단어가 함께 쓰였다. 사마천도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어’라는 단어를 쓴 바 있다. 평범한 단어 잠실에 사마천의 억울함이 짙게 배어 있다.
『예기』(禮記) 「제의」(祭義),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 하」(光武帝紀下)
* 도판은 옥에 갇히는 사마천을 표현한 그림.
중국사의 오늘:
1369년 1월 11일(명 태조 홍무 원년 12월 기사)
명 태조 주원장이 조회를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서는 궁중의 빈터를 가리키며 태자 주표에게 “이곳에다가는 얼마든지 건물을 세울 수 있지만 백성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짓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