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가 뒤집히면 온전한 알은 없다.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

 

공융(孔融)은 동한 말기의 명사로 헌제 때 북해상을 지냈다. 일설에 따르면 조조(曹操)가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을 정벌하려 했을 때 공융은 극구 반대했다. 조조는 공융의 말을 무시했고, 이 때문에 공융은 뒤에서 몇 마디 원성을 늘어놓았다. 공융과 사이가 좋지 않던 어사대부 치려(郄慮)가 이를 알고는 조조에게 없는 말까지 보태 악의적으로 도발했다. 화가 난 조조는 즉각 공융과 그의 전 가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융이 체포될 당시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혼비백산 우왕좌왕했다. 그런데 공융의 두 아들은 태연자약하게 바둑을 두며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집안사람들은 아직 어린애라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며 얼른 도망치라고 권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새 둥지가 뒤집혔는데 알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잡혀갔다. 공융과 두 아들 모습 뒤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는 우리 가정과 가족의 모습이 겹친다. ‘복소무완란’(覆巢無完卵)은 가족에게 재앙이 몰아치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 공융

 

 

 

 

 

 

중국사의 오늘 :

14401212(명 영종 정통 511월 정사)

승려 양행상(楊行祥)이 주체(성조 영락제)의 조카로서 주체에게 쫓겨나 행방불명된 건문제(建文帝) 행세를 하다가 붙잡혀 수도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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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지만 같은 배에 탔다.

   風雨同舟(풍우동주)

 

춘추 시대 오와 월 두 나라는 오랫동안 원수처럼 싸웠다. 한번은 두 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 처음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배가 강 중간쯤 이르자 광풍이 몰아쳐 사나운 파도가 밀어닥쳤다. 배가 곧 뒤집힐 듯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거대한 풍랑 앞에서 두 사람은 원한을 잊고 서로를 구하기로 묵계했다. 힘을 합친 두 사람은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2009년 미국 워싱턴에서는 제1차 중미전략경제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재무부 장관이던 티머시 가이트너는 손자의 바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G2로 부상한 중국과 미국이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리 미운 적과도 손을 잡고 서로에게 같이 닥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가 있다. 세계 외교에서 이런 관계와 사례는 다반사이다. 문제는 강경, 감정일변도로 치닫는 우리의 남북 관계이다. 세계 초강대국조차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고전의 구절까지 인용해 가며 협력을 강조하는 판에 우리는 여전히 낡은 냉전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구지」(九地)

 

 

 

 

중국사의 오늘 :

19611211

1600년이 훨씬 넘은 당나라 장안성 유지가 1957년부터 발굴되어 전체 규모와 배치가 확인되었다. 현재 서안성의 다섯 배 규모였다.

 

 

* 당안성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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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창문으로 일이 새어 나가다.

   東窓事發(동창사발)

 

명나라 때 전여성(田汝成)이 펴낸 서호유림지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북송 말 북방의 강력한 금나라 군대가 남침하자 송나라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렸다. 악비(岳飛)는 주전파를, 진회(秦檜)는 주화파를 대표했다. 간신 진회는 온갖 음모와 술수로 악비와 그 부장 장헌(張憲) 및 악비의 아들 악운(岳雲)을 살해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진회는 아내 왕씨(王氏)와 함께 자기 집 동쪽 창문 아래에서 악비를 해칠 음모를 꾸몄다. 당시 왕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진회에게 소매에서 감귤을 꺼내 둘로 쪼개면서 이게 뭐 어렵습니까?? 옛말에 호랑이를 놓아주기는 쉬워도 잡기는 어렵다 했습니다.”라는 말로 진회의 결심을 촉구했다. 그 후 진회가 서호로 놀러갔다 병이 나서 죽고 그 아들도 뒤따라 죽었다. 왕씨가 도사를 불러 초혼제를 지냈는데 도사는 악비를 해친 자들이 모두 쇠족쇄를 찬 채 지옥을 떠돌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진회에게 아내 왕씨에게 전할 말이 없느냐고 하자 진회는 동창사발’(東窓事發)이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왕씨는 놀라서 몸져눕더니 이내 죽었다. 음모와 비밀이 발각되었음을 가리키는 성어이다.

 

서호유람지여』(西湖遊覽志餘)

 

 

 

 

중국사의 오늘 :

18881210

강유위(康有爲)가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강유위는 변법개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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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두는 당사자가 길을 잃다.

   當局者迷(당국자미)

 

이 말 뒤에 따라서 나오는 대목은 구경꾼은 길을 잘 살핀다.”(傍觀必審)이다. 흔히 바둑판이나 장기판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본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당나라 때 원담(元澹)위전』(魏典) 30편을 지어 많은 학자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이 무렵 위광(魏光)이 명재상 위징(魏徵)이 수정한 예기』(禮記)를 경전에 편입시키자는 건의를 올렸다. 현종은 바로 승낙하고 원담에게 자세히 교정을 보고 주해를 달도록 했다. 원담이 이 일을 끝내고 주해본을 올리자 우승상 장열(張說)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 훌륭한 주석본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왜 또 주석본이 필요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현종의 마음이 흔들리자 원담은 석의」(釋疑)라는 글을 지어 자신의 관점을 해명했다. 여기서 원담은 주인과 객의 문답 형식으로 장열의 문제 제기에 반박했다. 종래 주석서들에 문제가 많아 새로이 정리한 것인데 수구적 사고방식에 매여 있으면 되겠느냐면서 바로 이 성어를 언급했다. ‘당국자미’(當局者迷)는 당사자가 왕왕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주관적 편견에 빠지는 반면 지켜보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을 비유한다.

 

신당서』(新唐書) 원담전」(元澹傳)

 

 

 

 

 

중국사의 오늘 :

645129(당 태종 정관 1911월 경진)

당나라 태종이 요동에서 장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역주(易州)를 지났는데 역주의 관원이 겨울철에 온실에서 채소를 키우게 하는 등 백성을 부려 황제에게 아부하자 그를 파면시켰다. 다만 이는 겨울철에 온실에서 채소를 키우는 최초의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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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진다.

   大器晩成(대기만성)

 

이 유명한 사자성어는 도덕경의 다음 대목에서 나왔다. “가장 큰 네모에는 모서리가 없고, 가장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지며(만들어지지 않고), 가장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가장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大方無隅, 大器晚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동한 말, 최염(崔琰)은 원소(袁紹)와 조조(曹操)의 문객을 지냈다. 조조 밑에서 상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조조는 큰아들 대신 작은아들 조식(曹植)을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최염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사실 조식은 최염의 조카사위였지만 최염은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런 최염에게는 최림(崔林)이란 사촌동생이 있었다. 최림은 젊었을 때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은 그를 몹시 아끼면서 재능이 큰 사람은 시간이 걸려야 그릇이 될 수 있다. 최림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다.”고 했고, 최림은 훗날 조정에 크게 중용되었다.

도덕경』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이 가리키는 의미는 큰 그릇은 만들어지지 않는다.’에 가깝지만 현실에서는 큰일을 할 인재는 비교적 늦게 성취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로 정착되어 있다. 일찍 피어 일찍 시드는 꽃보다 다소 더디게 피더라도 오래 피어 있는 꽃이 많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닐까?

 

도덕경』(道德經)

 

 

 

 

 

중국사의 오늘 :

962128(북송 태조 건융 311월 계해)

송나라 정부에서 지방 관리의 승진을 인구 증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규정을 발표했다. 당나라 말기 오대 10국의 혼란기에 인구가 크게 줄면서 취해진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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