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가 뒤집히면 온전한 알은 없다.

   覆巢無完卵(복소무완란)

 

공융(孔融)은 동한 말기의 명사로 헌제 때 북해상을 지냈다. 일설에 따르면 조조(曹操)가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을 정벌하려 했을 때 공융은 극구 반대했다. 조조는 공융의 말을 무시했고, 이 때문에 공융은 뒤에서 몇 마디 원성을 늘어놓았다. 공융과 사이가 좋지 않던 어사대부 치려(郄慮)가 이를 알고는 조조에게 없는 말까지 보태 악의적으로 도발했다. 화가 난 조조는 즉각 공융과 그의 전 가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융이 체포될 당시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혼비백산 우왕좌왕했다. 그런데 공융의 두 아들은 태연자약하게 바둑을 두며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집안사람들은 아직 어린애라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며 얼른 도망치라고 권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새 둥지가 뒤집혔는데 알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잡혀갔다. 공융과 두 아들 모습 뒤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는 우리 가정과 가족의 모습이 겹친다. ‘복소무완란’(覆巢無完卵)은 가족에게 재앙이 몰아치면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

 

* 공융

 

 

 

 

 

 

중국사의 오늘 :

14401212(명 영종 정통 511월 정사)

승려 양행상(楊行祥)이 주체(성조 영락제)의 조카로서 주체에게 쫓겨나 행방불명된 건문제(建文帝) 행세를 하다가 붙잡혀 수도로 압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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