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과 최해가 의기투합하다.

   沆瀣一氣(항해일기)

 

송나라 사람 왕당(王讜)이 편찬한 당어림(唐語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희종 때 장안에서 과거가 거행되었다. 전국 각지의 인재들이 앞을 다투어 올라와 시험에 임했다. 고시생 중에 최해(崔瀣)는 학문이 매우 뛰어난 인재로 급제를 자신했다. 당시 주시험관은 최항(崔沆)이었는데 최해의 문장을 보고는 한눈에 최해의 재능을 간파하고 당장 그를 급제자 명단 맨 위에 올렸다. 당당히 급제한 최해는 관례에 따라 주시험관인 최항, 즉 은사(恩師)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좌주(座主) 최항은 문생(門生) 최해를 보고 같은 최씨라는 사실에 더욱 기뻐했다. 게다가 이름인 를 합치면 좋은 뜻의 단어가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두 글자를 합쳐 좌주문생(座主門生), 항해일기(沆瀣一氣)’라는 두 구절을 만들어 서로 의기투합하는 사람이 한곳에 모였다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로 사용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찰떡궁합이 이와 비슷한 어감을 준다.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만, 나쁜 쪽으로 항해일기하여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당어림(唐語林) 보유기무종지소종(補遺起武宗至昭宗)

 

 

 

 

 

중국사의 오늘 :

17921025(청 고종 건륭 579월 병오)

건륭제가 금분파병’(金奔巴甁)을 티베트로 가져가 라싸 대소사(大昭寺)에 모시게 함으로써 금분파병으로 달라이와 판첸 계승자를 뽑는 제도를 확정했다.

 

* 대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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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해치는 말

   害群之馬(해군지마)

 

전설 속 제왕으로 중국 사람의 시조로 추앙받는 황제(黃帝)와 관련한 일화다. 황제가 순시를 나갔다가 양성(襄城)이란 곳에서 길을 잃었다. 말을 몰며 지나가는 어린 목동을 보고는 길을 물었다. 다부지게 대답하는 목동이 기특하여 황제는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물었다. 목동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에 산수를 유람하다 병이 났습니다. 한 선배께서 밖을 유람할 때는 해가 뜨면 나가고 해가 지면 돌아와 쉬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목동이 사양하다 대답했다. “말을 방목하는 것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리를 해치는 말만 내쫓으면 나머지 말은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황제는 목동을 하늘이 내리신 스승이란 뜻에서 천사’(天師)라 부르며 공경하게 몇 번이나 절을 한 다음 길을 떠났다. 목동의 이야기를 조직과 정치에 적용하면, 리더의 눈과 귀를 가리고, 리더의 권위를 사칭하여 조직원을 해치는 간신배를 내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리더 자신이 밝아야 한다. 옛사람들은 이를 명기’(明己)라 했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 황제

 

 

 

 

 

 

중국사의 오늘 :

19761024

4인방 분쇄를 축하하기 위해 북경 천안문 광장에 100만 인파가 모였다. 이로써 약 10년 동안 중국을 광기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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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을 불어서 흠을 찾아내다.

   吹毛求疵(취모구자)

 

한비자(韓非子)한비자(韓非子) 대체(大體)에서 정치란 큰 틀을 장악하고 법도에 따라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가의 냄새가 다분하다. 한비자의 말을 좀 더 들어 보자. “털을 불어서 작은 흠을 찾아내서는 안 되며, 더러운 때를 씻어 내면서까지 찾기 어려운 병을 찾아내서도 안 된다. 목수는 나무를 자를 때 먹줄선 밖을 잘라도 안 되고, 먹줄선 안으로 잘라도 안 된다. 법도의 한계 너머까지 다그쳐서도 안 되며, 그 한계 안에서는 해이해져서도 안 된다.” ‘취모구자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털어서 먼지 내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부러 흠을 잡으려 하거나, 도발하여 실수하게 만들어 약점을 찾는 것을 비유한다. ‘취모구자는 마치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병리 현상을 지적하는 성어처럼 보인다. 인간은 실수의 동물이다. 동시에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줄 안다. 지나간 작은 실수까지 들춰내서 현재를 단정하려고 기를 쓰는 일이 너무 많다. 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모습에 근거하여 보호해 줄 것은 보호해 주는 풍토가 아쉽다. 상처를 쑤시면 덧나기 마련이다.

 

한비자(韓非子) 대체(大體)

 

* 한비자

 

 

 

 

 

 

중국사의 오늘 :

18561023

중국 시장을 좀 더 개방시키고 1차 아편전쟁으로 얻은 권익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영국에서 애로호 사건을 도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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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갇힌 죄수

   詩囚(시수)

 

시선(詩仙)이란 단어는 들어 보았어도 시수’(詩囚)란 단어는 생소할 것이다. 당나라 시기는 말 그대로 ()의 시대였고, ‘당시’(唐詩)는 당나라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시인과 시가 출현했다는 반증이다. 그 숱한 시인 가운데에서도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는 대단히 특이했다. 이들은 시를 창작하느라 공무(公務)를 잊는 것은 물론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했다. 생활이 어렵고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 때문에 삶이 고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창작된 시도 어두웠다.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말이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시수라 표현했다. 원나라 때 문인 원호문(元好問)논시(論詩)에서 맹교의 궁핍과 시름은 죽어서도 쉬지 못하니, 이 높고 넓은 천지에서 시에 갇혔구나라고 했다. 가도는 글자 하나하나를 다듬고 또 다듬어 퇴고’(推敲)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시대는 바뀌었고 세상은 달라졌지만 이들의 창작 태도와 정신만큼은 창작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 정신을 본받으려는 사람이 없을 뿐. ‘시수는 고통스럽게 시를 창작하는 시인을 비유하는 특별한 단어가 되었다.

 

논시(論詩)

 

* 맹교

 

 

 

* 가도

 

 

 

 

 

 

중국사의 오늘 :

4221022(북위 명원제 태상 79월 신유)

명원제(明元帝)가 교산(橋山, 섬서성 황릉현)에 행차하여 사람을 보내 황제(黃帝)와 요() 임금의 사당에 제사를 올리도록 했다. 선비족 출신인 북위 황제들은 한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자신들을 황제(黃帝)의 후손으로 자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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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개조차 편치 않다.

   鷄犬不寧(계견불녕)

 

당나라는 중기에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고 군벌이 할거하는 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통치자는 늘어나는 군비와 권력 유지를 위해 백성을 죽어라 쥐어짰다. 뜻있는 사람은 박해를 받았다. 유명한 문인 유종원(柳宗元)도 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는 백성의 비참한 생활상에 충격을 받아 뱀 잡는 사람 이야기라는 뜻의 포사자설(捕蛇者說)이란 글을 써서 당시 상황을 폭로했다. 이 사람은 삼대째 뱀 잡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 오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독사에 물려 죽는 비극을 겪고도 이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농사짓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농사를 지으면 관리들이 허구한 날 쳐들어와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뜯어 가는 통에 닭과 개조차 편할 날이 없어결국은 도망가거나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농사짓는 사람이 착취의 주된 대상이었고, 지금은 유리 봉투로 상징되는 월급쟁이다. 이렇게 해서 계견불녕은 아주 요란하고 지독하게 소란을 떨거나 사납게 행동하는 것을 형용하는 성어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주변까지 피해를 당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포사자설(捕蛇者說)

 

 

* 유종원

 

 

 

 

 

 

중국사의 오늘 :

6381021(당 태종 정관 129월 갑인)

당 태종이 신하들과 창업과 수성 중 어느 쪽이 더 힘든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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