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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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도사> 초기에 게스트 고민이었나 아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었나 암튼, 신선하다 아니다를 물어 아니다면 막걸리통으로 머리를 맞는 부분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이 소설에 대한 내 느낌을 묻는다면 내 대답은 "존나 신선하다"이다. 좀 더 길게 말하라면, 트랜스 짬뽕적이게 신선하고, 열라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지만, 확실한 답을 쥐어주지는 않는, 한 마디로 독자를 제 맘대로 갖고 노는, 똑똑하고 도도한 작품이랄까.

 

알고 보니 결국, 제목이 답인 소설이었더만. 난 나중에 모렐의 대사가 나올 때까지, 알쏭 달쏭한 사건 전개와, 화자의 오락 가락하는 진술들 속에서, 수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며, '나'와 그 섬의 침입자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려야 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화자의 말대로 정신병자? 아님 이상한 약초를 먹고 환각을 일으키는 중? 결국 나의 정체는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같은 귀신이다라고 결론을 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가 본 모든 것들이 모렐의 발명품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다는 것이 밝혀 지면서, 나는 잠시 멍했다. '뭐지 졸라 신선하고 묘한 이 느낌은?' 예상을 깨고, 과학 발명품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다니. 미스터리에서 시작하여 SF로 넘어가더니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끝이 나더란 말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이 놀라운 상상력과 재주.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작용하면 영혼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인간의 모든 감각을 재현할 수 있다면, 결국 영혼까지 재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작가는 결국 인간의 본질을 감각의 총합으로 파악하고 있는 걸까? 기계로 재현된 이미지가 인간의 영혼까지 포함 하여, 실제의 나와 재현된 나를 그 누구도 구별할 수 없다면, 나는 과연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이며,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비현실이며 그 경계는 어디 일까?  인공적인 환영인 포스틴을 사랑하는 나,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진짜 사랑일까? 그 마저도 환영일까? 기계가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면, 기계를 만든 인간이 다시 기계의 피조물이 되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예술가를 포함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과학자의 윤리 의식도 묻고 있는 것 같다. 모렐은 그의 동료들의 동의 없이 그들의 일주일을 담았고, 발명 초기 단계에서의 사람들의 이유 없는 죽음도 어쩌면 그의 실험과 관련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창조의 위험, 즉 상이한 의식들을 동시에 균형있게 다루는 것의 위험성과 함께 잔인하기 그지없는 영원한 회귀 - 끊임없는 반복-에 대한 물음들. 불멸, 정확하게 말해 불멸의 사랑을 향한 인간의 욕망들. 인생의 찰나적인 순간의 포착과 반복 재생으로, 우리 삶의 순간 순간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이 생의 삶이 다음 생에 다시 똑 같이 반복된다는 윤회 사상까지.

 

나는 과연 누구였을까? 모렐과 포스틴과 그의 동료들은 언제 그 섬을 방문했을까? 모렐이 정말 모든 사람들을 죽였을까? 그들은 정말 죽었을까? 모든 것이 모호해서, 백가지 독자의 백가지 해석이 가능한 참 신기한 소설이다. 

 

* 책 접기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 관객에게는 끔찍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매우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쁜 소식과 전염병에서 벗어나 그들은 마치 모든 일이 처음 일어나는 것처럼 영원히 살아간다. 그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조수의 주기적 순환으로 상영이 정기적으로 중단되기 때문에 반복이란 그리 무자비한 것도 아니다. 이제 반복되는 삶을 보는 데 익숙해진 나는 내 삶도 돌이킬 수 없는 우연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상황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나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으며, 매 순간 그 자체가 유일한 것이고 서로 다른 것이다. 그리고 게으름 때문에 나는 수많은 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물론 영상들에게도 다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은 영원한 그 주가 기록되었을 때의 양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그 영상들의 한 주와 같으며 다음 세상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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