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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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2 때 읽은 책, 마흔이 다되어 다시 읽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설렘과 기대로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동창을 간만에 만난 듯, 반갑고 정겨웠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리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 남아있는 듯한, 첫사랑의 강렬함. 그 사랑이 주는 기쁨과, 사랑에 빠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세상 만물의 아름다움,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주는 고통. 이 모든 잊고 있던 오래된 감정들을 베르테르와 함께 느끼면서 행복했다. 이를테면 정신적 사랑의 회춘을 한 듯한 느낌 이랄까.

 

하지만, 그 순진한 행복함도 잠시, 이런 저런 현실적 생각들이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로테는 과연 베르테르가 생각하는 것 처럼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의 완벽한 표상인가? 두 남자에게 사랑 받는 기쁨을 그녀도 은근히 즐겼던 것은 아닌가? 로테의 좀 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베르테르의 눈과 생각을 통해서만 그려지는 로테가 아닌, 그녀의 좀 더 리얼한 실체와, 베르테르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갈등들을.

 

그래 넉 달 동안은, 아니 길게 잡아 몇 년 동안은 그렇게 미친듯이 사랑할 수 있겠지. 분명 어느 정도는, 로테가 남의 여자라는 현실적 제약이 베르테르의 사랑을 더욱 맹렬하게 했을테고. 책상에 앉아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기 보다, 차라리 로테를 덮쳐 보기라도 하든지, 우유부단하여 슬플 수 밖에 없는 베르테르에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실연과 실직과 신분의 한계에서 오는 좌절감이 짬뽕 되어, 그토록 밝고 긍정적이던 한 젊은이가 자살에 이르는 우울증의 단계로 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베르테르식 사랑이 희귀해진 오늘에도, 여전히 같은 이유들로 상처받고 좌절하는 수많은 젊은 베르테르들이 떠올랐다.  

 

이제서야 제목이 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지 알 것 같다. 늙은 베르테르였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이며 젊은 베르테르를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책 접기>

"이 세상에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소위 양자 택일의 방식으로 처리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도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도 가지가지 음영이 있는 법이다."

 

"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요.'하고 나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기쁨, 슬픔, 괴로움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고, 그 한도를 넘으면 당장에 파멸하고 말아요. 따라서 이런 경우 어떤 사람이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일이건 육체적인 일이건 간에 자기의 고통의 한도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지요. 따라서 나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삶을 발효시켜 주었던 효모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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