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세세한 내용들과 동물들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마에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죠.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노부인이 저주에 익숙해져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저주를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세상의 인색함을 수긍했습니다. 아주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 거죠. 삶은 관대한 것이고, 언제나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데 말입니다.
그 불쌍한 노부인에게서 악마를 내쫓으려는 시도는 동시에 그녀의 세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죠. 우리는 스스로에게 저지를수 있는 잔인한 행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지요. 종종 우린 선을 보여주려고 하고 삶이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악마의 것인 양 거부 합니다.

아무도 삶에게 많은 걸 바라려고 하지 않아요.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한 싸움‘을 이끌고 싶어하는 사람은 세상을 무궁무진한 보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 발견해서 차지해주기를 바라고있는 보물을 대하듯 하는 거죠."

우리는자신의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끊임없이 애쓰지요.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세계관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환히 꿰뚫어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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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1992년이다.
나는 너무나 천진 난만했고 너무나도 안락하고 평온하게 부모님의 사랑을 드뿍 받으며 지냈었 기억이다. 주말이면 아빠가 좋아하는 낚시를 하러 강원도 양양을 종종 갔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산에 오르기 위해 지도를 펼쳐놓고 국도를 따라 운전을 했던 아빠의 모습도 떠오른다.
지금 누리고 있는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살았는데 이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친구가 내 눈앞에서 폭격과 총을 맞아 허무하게 쓰러지고, 어느날 갑자기 내 이웃이 적이 되고, 물과 양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감내해야 한다면... 너무나도 평범했던 사람들이 삐뚤어진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지도자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는 사실이 황망하고 허무하다.
1992년 5월 27일 오후 네시, 사라예보 점령기간동안 여러개의 박격포탄이 바세 미스키나에 있는 시장 뒤쪽에서 빵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덮쳤다. 22명이 죽었고 최소한 70명이 디쳤다. 이튿날부터 22일 동안, 저명한 현지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죽은 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 장소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했다. 이 실화는 이 책의 영감이 되었고 그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내전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재 탄생 되었다.

-첼리스트는 일어서서 의자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거리를 등지고 돌아서서 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순간 케난은 거기에 첼리스트가 언제 있었나 싶다. 구경꾼들은 조금씩 조금씩 흩어지다가, 결국 케난과 한 노파만 남는다. 노파는 꽃 더미와 인도에 떨어진 포격 자국을 보고 있다.
노파가 케난을 돌아보며 말한다.
˝내 딸이, 그애가 빵을 사려고 이곳에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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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머물고 싶은가 하는 것임을 그는 깨닫는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로지 삶에마지막 일별을 던지기 위해, 이제 곧 죽을 거라는 인식과 함께반드시 찾아올 그 공포에 맞설 것인가? 드라간은 자신의 대답이예스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는 저들이 저 안전한 언덕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이 전쟁이 끝나길 바랄까? 뭔가를 맞히면 행복해할까? 아니 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그들이 살기 위해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로 충분할까? 집에 가서 자기 아이들을 보면 죄책감을 느낄까? 아니면 미래 세대를 위해 대단한 봉사를 했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할까?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드라간은 왜 저들이 자기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를 죽여서 무슨 목적을 이루겠다는 건지, 자신의 죽음이 자기 말고 도대체 누구한테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건지, 지 금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드라간은 이탈리아에 가고 싶지 않다.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지만,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또 절대로 그렇게 되지도않을 것이다. 사라예보 사람일 수 없다면, 그는 어느 나라에도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그의 집이고, 여기가 그가 있고도시다. 그는 남은 인생을 점령하에 살고 싶진 않지만,
하에 살고 싶진 않지만, 언덕 위의 저들에게 도시를 넘겨준다는 것은게 도시를 넘겨준다는 것은 그가 영원히 집 없이 살아야 한다는 터이다.

그가 여기 있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그가 한때 사랑했고 다시 사랑할 터인 세상의 흔적을 외면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총을 든 자들에게서 벗어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이 도시의 거리들을 마음껏 거닐고, 식당에 앉아서 한끼 식사를 하고, 상점의 진열창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으리라는희망이 있다.
드라간은 자신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절대로 잊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삶이 예전과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자기가 그때까지 살아 있어도, 그는 이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않다. 설명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사라예보엔 논리라는 것이 전혀 없다. 그는 아직도 이 사태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앞으로도 절대 믿을 수 없기를 바란다.

그녀는 네르민의 사무실을 나와 거리의 밝은 불빛 속으로 걸 어들어간다. 어깨 위의 소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진 다. 그녀는 악과의 대립에 관해 네르민이 한 말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똑같은 것을 믿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나쁜 사람들을 죽이므로 선하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저들을 죽 이는 이유가 내게 중요한가? 그녀는 자신이 더이상 동료 시민들을 죽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는 저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죽인다. 그렇다면 저들을 미워할 만한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한 달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대답은 예스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뭐가 타당하고 뭐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게 누구인지 궁금 하다.

케난도 소문을 들었다. 이스멧인지 아내인지가 얘기해줬다.
사람들이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다가 죽은 그 거리에서, 한 첼리스트가 매일 연주를 하고 있다고. 그게 일주일쯤 전의 일이다.
첼리스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보았다고 했다. 자기 집 창문에서 지켜봤다는 것이다. 첼리스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들었을 때, 케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좀 어이없고감상적인 짓이라고 생각했다.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을 테고, 누구 하나 배부르게 먹여주지도 못할 테고, 벽돌 한 장 "
끼울 수도 없을 터였다. 어리석은 행동이자 무의미하고도였다.
등이자 무의미하고 헛된 시도였다.

그러나 케난에게 이런 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 첼리스 트를 쳐다보고 있는 그는, 음악이 그의 안에 스며들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첼리스트의 머리카락이 매끈하게 펴지고 그의 턱수염이 사라지는 걸 지켜본다. 더러운 턱시도가 깨끗해지고, 구두는 거울처럼 반짝반짝 윤이 난다. 케난은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곡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왠지무슨 곡인지는 알 것 같다.

귀에 익은 그 곡조는, 새 코트를 차려입고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겨울 길을 걷는 어린 소년처럼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첼리스트 뒤에 선 건물이 저절로 회복된다. 총알과 유산탄 자국들은 회반죽과 페인트로 가려지고, 유리가 다시 모이며 창들이 투명해지더니 햇빛이 반사되자 반짝인다. 도로에 깔린 판석들도 저절로 바르게 정돈된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키가 더 커지고, 얼굴에도 살이 붙고 화색이 돈다. 해진 옷들은 잃어버린실오라기를 되찾아 화사해지고 스스로 주름을 편다.

케난은 사방팔방에서 그의 도시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모습을지켜본다. 첼리스트는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케난은 이제 자신이 뭘 할 것인지 안다. 그는 길 위쪽의 자기 아파트로 걸어올라간다. 가쁜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한 번에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아밀라가 그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그들이 훨씬 더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붙잡고 키스한다. 그리고 벌꿀빛 도는 그녀의 숱 많은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로 훑는다.

그는 일어선다. 무릎과 등이 뻐근하다. 모자 잃은 남자의 시체로부터 떨어져나와 에미나의 코트를 집어든다. 코트 옆에 있던남자의 모자도 집어든다. 그는 코트와 모자를 번갈아가며 한참동안 쳐다본다. 의복의 상태를 보고 추측했다면, 죽은 사람은 에미나이고, 산 사람은 모자 잃은 남자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특히 이곳에선, 이 도시가 사라진다면, 그건 언덕 위의 저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골짜기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과 함께 사는 데 만족하고, 언덕 위의 저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될 때, 그때 사라예보는 사라질것이다. 드라간은 에미나의 코트를 들고 가서, 자기 발치에 누운남자에게 덮어주고, 그에게 모자를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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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마치 레이스 커튼에 비쳐들듯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할머니가 떠올랐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아직 살아 계셨던 할머니 때문은 아니었다. 온몸을 감싸는 살아있다는 행복감과, 언젠가 이 모든 게 다 끝나버릴 거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욱 강렬해지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압도했고, 그녀는 결국 길 한켠에 자동차를 세우고 말았다.
잠시 뒤에 그녀는 자신이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이 바보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우연히, 인간이라는 실존의 핵심과 만났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고 있다. 삶은 놀라운 것이며, 또한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드문 능력이다.

그러나 드라간은 알고 있다. 끝내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쓸 것이고, 그 다음 또다른 누군가가 그러리라는 것을. 그리고 저격수가 총을 발사했을 때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뒤에는아까 그 두 사람이 간신히 총알을 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에 서리라는 것을, 그래도 저격수는 다시총을 쏠 것이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가 아니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그리고 모든 게 되풀이될 것이다.
마치 제 종족 하나가 잡아먹힌 물웅덩이로 또다시 돌아가는 가젤 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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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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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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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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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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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겁니다.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 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일상의 성벽 안에 머무르며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창이 서로 부딪치며 부러지는 소리, 땀과 먼지 냄새, 말에서 추락하는 고리,정복의 열망으로 목이 마른 전사들의 불꽃같은 눈빛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 싸우는 사람의 심장이 느끼는 그 엄청난 희열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싸우는 그에게는 승리나 패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젊은 날의 환상은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래의 누군가 아직도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원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놀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실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우린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겁니다. 즉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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