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머물고 싶은가 하는 것임을 그는 깨닫는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는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렇게 두려워할 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로지 삶에마지막 일별을 던지기 위해, 이제 곧 죽을 거라는 인식과 함께반드시 찾아올 그 공포에 맞설 것인가? 드라간은 자신의 대답이예스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는 저들이 저 안전한 언덕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이 전쟁이 끝나길 바랄까? 뭔가를 맞히면 행복해할까? 아니 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그들이 살기 위해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로 충분할까? 집에 가서 자기 아이들을 보면 죄책감을 느낄까? 아니면 미래 세대를 위해 대단한 봉사를 했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할까?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드라간은 왜 저들이 자기 같은 사람들을 그렇게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를 죽여서 무슨 목적을 이루겠다는 건지, 자신의 죽음이 자기 말고 도대체 누구한테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건지, 지 금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드라간은 이탈리아에 가고 싶지 않다.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지만,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또 절대로 그렇게 되지도않을 것이다. 사라예보 사람일 수 없다면, 그는 어느 나라에도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그의 집이고, 여기가 그가 있고도시다. 그는 남은 인생을 점령하에 살고 싶진 않지만, 하에 살고 싶진 않지만, 언덕 위의 저들에게 도시를 넘겨준다는 것은게 도시를 넘겨준다는 것은 그가 영원히 집 없이 살아야 한다는 터이다.
그가 여기 있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그가 한때 사랑했고 다시 사랑할 터인 세상의 흔적을 외면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총을 든 자들에게서 벗어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이 도시의 거리들을 마음껏 거닐고, 식당에 앉아서 한끼 식사를 하고, 상점의 진열창들을 맘껏 구경할 수 있으리라는희망이 있다. 드라간은 자신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절대로 잊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삶이 예전과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자기가 그때까지 살아 있어도, 그는 이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않다. 설명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사라예보엔 논리라는 것이 전혀 없다. 그는 아직도 이 사태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앞으로도 절대 믿을 수 없기를 바란다.
그녀는 네르민의 사무실을 나와 거리의 밝은 불빛 속으로 걸 어들어간다. 어깨 위의 소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진 다. 그녀는 악과의 대립에 관해 네르민이 한 말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똑같은 것을 믿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나쁜 사람들을 죽이므로 선하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저들을 죽 이는 이유가 내게 중요한가? 그녀는 자신이 더이상 동료 시민들을 죽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녀는 저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죽인다. 그렇다면 저들을 미워할 만한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한 달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대답은 예스였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뭐가 타당하고 뭐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게 누구인지 궁금 하다.
케난도 소문을 들었다. 이스멧인지 아내인지가 얘기해줬다. 사람들이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다가 죽은 그 거리에서, 한 첼리스트가 매일 연주를 하고 있다고. 그게 일주일쯤 전의 일이다. 첼리스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보았다고 했다. 자기 집 창문에서 지켜봤다는 것이다. 첼리스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들었을 때, 케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좀 어이없고감상적인 짓이라고 생각했다.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을 테고, 누구 하나 배부르게 먹여주지도 못할 테고, 벽돌 한 장 " 끼울 수도 없을 터였다. 어리석은 행동이자 무의미하고도였다. 등이자 무의미하고 헛된 시도였다.
그러나 케난에게 이런 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 첼리스 트를 쳐다보고 있는 그는, 음악이 그의 안에 스며들면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는 첼리스트의 머리카락이 매끈하게 펴지고 그의 턱수염이 사라지는 걸 지켜본다. 더러운 턱시도가 깨끗해지고, 구두는 거울처럼 반짝반짝 윤이 난다. 케난은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곡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왠지무슨 곡인지는 알 것 같다.
귀에 익은 그 곡조는, 새 코트를 차려입고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겨울 길을 걷는 어린 소년처럼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 첼리스트 뒤에 선 건물이 저절로 회복된다. 총알과 유산탄 자국들은 회반죽과 페인트로 가려지고, 유리가 다시 모이며 창들이 투명해지더니 햇빛이 반사되자 반짝인다. 도로에 깔린 판석들도 저절로 바르게 정돈된다.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키가 더 커지고, 얼굴에도 살이 붙고 화색이 돈다. 해진 옷들은 잃어버린실오라기를 되찾아 화사해지고 스스로 주름을 편다.
케난은 사방팔방에서 그의 도시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모습을지켜본다. 첼리스트는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케난은 이제 자신이 뭘 할 것인지 안다. 그는 길 위쪽의 자기 아파트로 걸어올라간다. 가쁜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한 번에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서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아밀라가 그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그들이 훨씬 더 젊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붙잡고 키스한다. 그리고 벌꿀빛 도는 그녀의 숱 많은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로 훑는다.
그는 일어선다. 무릎과 등이 뻐근하다. 모자 잃은 남자의 시체로부터 떨어져나와 에미나의 코트를 집어든다. 코트 옆에 있던남자의 모자도 집어든다. 그는 코트와 모자를 번갈아가며 한참동안 쳐다본다. 의복의 상태를 보고 추측했다면, 죽은 사람은 에미나이고, 산 사람은 모자 잃은 남자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특히 이곳에선, 이 도시가 사라진다면, 그건 언덕 위의 저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골짜기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과 함께 사는 데 만족하고, 언덕 위의 저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될 때, 그때 사라예보는 사라질것이다. 드라간은 에미나의 코트를 들고 가서, 자기 발치에 누운남자에게 덮어주고, 그에게 모자를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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