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황모 작가를 좋아했었지. 물론 그 작가의 소설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존경했고 참 멋지다 생각했었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 기준에서 조금 실망했달까? 그래서 그 분 최근작은 아무리 광고를 해대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중이지.
난 작가란 모름지기 문학하는 사람이다, 라고 국한짓던 생각을 버린 게 몇 해 안 돼.(왜 문학가만 작가라고 생각했는지 나 되게 띨띨한 거 같아. -ㅅ-) 근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까 좋아하는 작가들이 마구 생기는 거야.
내가 최근에 오소희 작가 직접 만나고 온 거 알지? 실은 나 그때까지만 해도 오소희 님의 모든 책을 다 읽었던 건 아니었어. 두세 권 읽은 책만으로도 그저 멋지다, 존경스럽다에서 머물렀지. 그런데 정말이지 어느 가수라도 콘서트 한 번 다녀오면 팬이 돼버리잖아. 꼭 그것처럼 나도 그랬지 뭐냐. 완전 푹 빠져버린 거지. 곧장 안 읽은 책 몽땅 사서 다 읽었어. 그렇게 해서 난 오소희의 전작주의자가 되었다, 그 말씀이지. 하하하.
뭔 서두가 이렇게 기냐고? 실은 있지, 나 오늘부터 전은주의 전작주의자도 같이 하기로 했거든.(펴낸 책이 아직 두 권밖에 아니라 너도 맘 먹으면 이 분의 전작주의자 될 수 있어.) 앞서 낸 <초간단 생활놀이>는 약간의 백과식이랄까? 제목 그대로 아이랑 생활놀이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정말 초간단이야. 그럼에도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고민인 엄마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한 책이기에 기꺼이 별점 다섯 개 줄 수 있을 만큼 좋은 책이야. 구체적인 방법도 방법이지만 코드가 잘 맞더라구. 이미 내가 하고 있는 놀이도 있었고, 비슷한 것도 있었고, 꼭 해봐야겠다 싶은 게 참 많았거든. 더욱 마음에 든 건 큰 돈 들이지 않은 놀이들이었고, 자연물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얼른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었어.
그때도 읽으면서 작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을 연발했더랬는데 이번 책은 그 수위가 한껏 올라갔지 뭐겠냐. 여행기에 무슨 아이디어냐 싶겠지만 이번엔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고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이 풀렸다고나 할까. 그게 뭔지는 순전히 내 느낌이니까 궁금하면 너도 직접 읽어보고 느껴보길 바라.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더 확실히 알았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거 기가 막히게 잘 하는 분이라는 거.
이 책은 제주여행에 대한, 특히나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에게 유용한 깨알같은 정보가 가득해. 사실 애 데리고 여행(까지는 아니어도 어디라도 갈라치면)하려고 정보를 찾아보아도 애엄마는 늘 아이를 고려해 일정을 재구성 해야만 하거든.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수고를 확 덜어주지.
실은 이 책 읽고 싶었던 이유 중엔 약간의 꼼수도 있었다는 거 고백한다. 제주도는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답하는 최고의 국내 휴가지 아니겠냐. 그런데 이건 단순히 휴가지로가 아니라 단기 체류지로 제주를 선택한 거잖아. 이 책을 빌미로 제주도를, 그것도 아들내미랑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거지.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뭔지 너도 알지? 어려서 여행 자주 데리고 다녀봐야 아무 쓰잘데기 없다는 말. 어차피 기억도 못하는데 뭣하러 돈들여가며 고생하냐는 거지. 하지만 난 그 말 별로 귀담아 듣고 싶지가 않았어. 물론 기억 못하는 건 당연한 거지. 하지만 어디를 가든 아이는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걸 느낄 테고,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해서 기억에 가두지는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진 느낌은 마치 나이테처럼 아이의 내면에 자신만의 무늬로 남게 될 테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만약 하나도 기억 못하니까 더 커서 데리고 가라는 말에 네가 의한다면 아마도 그건 여행을 여행이 아니라 '학습'으로 여기고 있는 탓이 아닐까.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 것보다 그 여행으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는가, 어떤 추억이 생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208쪽) 그래서 공감해.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제주도가 아니었어. 적어도 내가 느낀 바로는 그래. 물론 이 책 여행기로 분류되어 있는데다 제주 여행 준비하기에 손색이 없는 책이기도 해.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건 '스케줄'에서 벗어나 아이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중요함이라는 것. 내가 평소에 스케줄 꼼꼼하게 짜서 아들내미랑 거창하게 어딜 잘 돌아다니고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 그런데도 어쩌다 하루 맘 먹고 외출할라치면 끼니랑 낮잠 고려해서 몇 시엔 출발을 해야 하고, 붐비는 퇴근길 피하려면 몇 시까진 일정(관람 등)을 마쳐야 한다는 등 재미있게 놀면서도 머릿속에선 수시로 시간표가 깜빡거리고 있거든. 어딜 가든 내가 이러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행동이지. 그런데 그게 도시에 살기 때문에 더 계산이 복잡해졌던 거였더라고. 그러면서 생각대로 일이 착착 안 되면 괜히 더 스트레스 받고 말이지.
이 책에서 표방하고 있는 컨셉(?)이 뭔줄 알아? 삼무(三無) 제주도야. 컴퓨터, 학원, 장난감 없는 제주도. 어때? 이 말 들으니까 관심 확 쏠리지? 장난감 없는 세상!! 그래, 나도 알아. 아이는 장난감이 없어도 잘 논다는 거. 고백하자면 나를 위해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야. 밥 할 때 장난감 쥐어주고, 설거지 할 때 장난감 쥐어주고...이젠 장난감의 자리를 컴퓨터가 공유하고 있지. 오죽하면 엄마들이 육아의 숨은 공로자로 뽀로로를 뽑겠냐고. 그런데 도시가 아니라면 장난감과 뽀로로의 도움이 없어도 되겠더라. 내가 사는 동네가 마당에 널부러진 돌멩이를 주워도, 길섶에서 풀잎 하나 뜯어도 그것이 장난감이 되는 곳이라면 까짓것 장난감 몽땅 버리지, 뭐.
내가 오소희님의 여행기를 처음 골랐을 때 아이와 단 둘이서 해외여행을 했다는 점에 무척 끌렸어. 이건 아마 아이엄마라면 당연히 공감할 거야. 어쩌면 이 책도 그래서 엄마들이 관심있어 하는지도 몰라. 그런데 있지, 여행을 거의 안 다녀본 내가 내린 결론이 뭔지 알아? 혼자하는 여행도 뜻깊겠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수고롭겠지만 그 어떤 여행에서도 얻을 수 없는 걸 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역시 아이는 자연 가까이에서 자라야 하는구나, 라는 거. 서른 중반의 내가 이룬 게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변변하게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해. 내가 농사꾼 부모 밑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그다지 자연친화적인 아이도 아니었지만 유년시절 내가 자라온 환경이야말로 내 몸 속에 나이테로 남아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 뭐냐고? 아이는 곧 진리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쓰고 나니 꼭 루소주의자같네.^^;;) 도시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 놓을 수 없는 현실과 욕망 때문에 지금 당장은 뭘 어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아이를 키우는 최적의 환경이 도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