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대의의 위의와 가치를 옹호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대의라는 당의 속에 감춰진 회색지대의 본질을 탐사하는 작가가 있다. 쿳시는 후자에 속하는데 감상을 용납하지 않는 비수 같은 단문으로 대학가에서, 흑인이 주인이 된 국가에서 치욕을 당하는 백인지식인의 모습을, 기막히게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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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1-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여성 독자나 흑인 독자의 입장에선 이 책이 불편하게 읽힐 여지가 있다. 이 책의 화자인 문학부 교수인 루리는 냉정하고, 위선적인 면모가 있으며, 욕망 해소에 집착하고, 인종 차별적인 관념을 떨쳐내지 못했으며,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때는 진보적 입장이자 기득권에도 한발 걸치고 있던 백인 남자가 자의보다 타의(부조리한 재판, 악의적인 조롱과 모욕, 지방에서 벌어지는 온갖 위법적 행위들 등등)로 인해 서서히 몰락해 가는 모습을 지극히 냉철한 관점에서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우리네 문화계가 도덕 강박증과 정의 실현 요구라는 기제를ㅡ나는 ˝택시운전사˝나 ˝1987˝과 같은 영화들에서 그러한 징후를 얼마간 느낀다ㅡ과하게 안은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쿳시의 ˝추락˝은 이러한 근래의 경향성과 극단의 대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쿳시의 생각과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의 문학적 기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고할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