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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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고를 겪어서 불구가 된 남자의 공포와 몰락을 그려낸 소설이다. 개인의 마음에 드리운 그늘을 포착하는 솜씨는 진보한 반면에 상황 설정과 관계 설정은 성글게 보인다. 무엇보다 장모의 악의적 행동을 뒷받침할만한 개연성과 사실성의 부족은 이 소설을 한낱 잔혹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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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6-04-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조받지 못한 자가 결국에는 블랙홀(空洞)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는 공력과 노력은 무척이나 값지다. 그럼에도 좀 더 흥미로운 서사(불구→몰락은 식상하지 않은가)를, 입체적인 인물상(장모는 그냥 악마처럼 보인다)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다.
이 작품보다 단수가 높다고 여겨지는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인 ˝인생의 친척˝이다. 이 소설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상처(아들 둘이 동반자살을 했다)를 받은 구라키 마리에란 이름의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 연극을 상연하고, 성적인 쾌락에 탐닉하며, 종교적인 단체에 가담하기도 하고, 농민공동체에 들어가서 고된 노동을 하기도 한다.
편혜영의 소설(물론 주인공이 장애인이므로 행동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이 육체적 고통→인생 몰락의 수순을 예리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면, 오에는 정신적 고통→치유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일상의 재건과 동지들과의 만남→ 성스러운 영면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서술한다.
내가 편혜영의 근작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어느 인간의 비극과 몰락을 치밀하게 그린 점은 좋으나, 장편으로서의 미덕과 특장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박하게 말하면 이 책은 단편을 장편으로 늘여쓴 듯한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