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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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보라는 ‘폐허 속 우주‘를 드러내기에는 그 분량이 넉넉하지는 않으며 주인공이 감옥을 거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소략하고 급작스럽다. 그럼에도 이소설은 아주아주 막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노년 여성 캐릭터의 터프함과 담대함을 수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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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1-07-2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설을 하자면, 나는 이 나라 문단에서 ‘터프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가를 만났던 경험이 드문 편이다. 박경리(˝토지˝의 최서희), 최윤(˝하나코는 없다˝의 장진자), 박서련(˝체공녀 강주룡˝의 주룡) 등 몇몇 소설과 인물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이들은 주류적인 경향보다는 예외적인 사례로서 나에게 읽힐 때가 많다.
나로서는 사람들이 어떤 불평불만을 할지언정 여성/퀴어/장애와 관련된 창작물은 앞으로도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방향성과 양적 증가보다도 서사적 재미와 매력적인 인물 창조를 작가들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것은 올해의 젊작상 작품집을 읽고 나서의 소회이기도 한데) 여러 작가들이 비슷비슷한 스타일과 메시지만을 제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삼십대 여성/퀴어들의 공부와 연애와 살림과 직장사, 이들이 동년배 또는 고직위 남자들에게 당하는 언어적/육체적 모멸 등. 이러한 주제에(만) 계속적으로 천착하고 있으며 캐릭터(들)의 독창성과 흥미성을 확보하는 부분에 대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의 주인공 바바 두냐나, 서보 머그더의 ˝도어˝의 중심인물인 에메렌츠 같은 인물들을 만나면 일단은, 그 캐릭터에 빠져들게 된다. 이들은 고통 받고 소외당하는 여성이면서도 생명사상이나 박애주의와 같은 사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며 세상에 쉽사리 굴하지 않는다. 언어 행동이 거칠더라도 뭇 생명과 대지를 소중히 생각하면서 불의를 행하는 무뢰배나, 가진 것 많은 주류들에게 주눅들지도 않은 채 자신이 지나온 생生의 문법과 이치에 따라서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