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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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체(사회적 질서에서 벗어나서 경계와 질서를 넘나드는 존재)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지고 상호공감하며 소란스럽게 연대하라는 메시지도 각별하지만 성평등을 보장할만한 물질적 재분배, 재구축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소략하다. 저자의 저력 부족이 아닌 소책자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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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1-01-0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이 공감의 윤리로 장식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독자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를 알기 위해 너를 물어야 한다고 해도, 나를 위해 너와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비체의 존재 조건이라고 해도,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체들은 공감적 연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137쪽).˝

졸견을 내놓자면 저자는 ‘공감의 윤리를 기반으로 소란스럽게 연대하라‘는 메시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제의식을 제출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화나고 월경越境하는 여성들, 이 몫 없고 배제된 이들의 법적 경제적 안전장치의 구축에 대한 의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중간에 낸시 프레이저의 주장을 빌려서 문화적 인정투쟁이 경제적 재분배를 대체할 수는 없기에 양자를 고려하면서 사회적 평등을 개념화하는 방법을 창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지만, 결말에서는 인정투쟁(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재강조하는 식으로 논의를 축소하고 있다는 인상도 든다. 물론 이는 상술했듯이 소책자의 한계일 것이다.

P.S 재작년 즈음에 사 놓고 완독을 하지는 않았는데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도 이 분이 번역한 책이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