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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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내와 피냄새가 나는 작품이다. 도시인의 정서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은 작단에 정지아는 이처럼 ‘빈티지한‘ 작품을 선보인다. 역사의 비극에 희생된 할아버지, 그의 후손들이 감내해야하는 허망과 형극의 삶을 담담히 서술한다. 예상가능한 서사임에도 간곡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저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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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10-2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 작품이 정지아의 최고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작가가 쓴 다른 명편들(이를테면 ‘행복‘이나 ‘봄빛‘)보다 뛰어나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별 다섯 개를 주지는 못했으나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은 깊으며 이런 작가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어째서?

내가 보기에는 한국 작단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정서 중 하나는 ‘조급‘이다. 사회적 사건 및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런 기류를 ‘누구보다 먼저‘ 서사화해서 작품의 문학성을 획득하고, 조속히 평단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나 같은 독자로서는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들의 노력과 공력을 폄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때때로 자신의 고유한 글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성‘과 ‘속도전‘과 ‘인정투쟁‘에 과하게 얽매여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지아의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는 참으로 촌티와 노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배경은 시골이고 화자는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는 이혼녀이며 그녀의 혈친(들)은 그야말로 무력과 불구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런 작품은 문순태 김원일 황석영 이문구 같은 노작가들이 지겹게 써온 것이라고‘
그런데 그런 작가들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도시성‘과 ‘세련미‘와 ‘핫이슈‘에 중점을 둔 작품들을 만나다가 정지아 같은 작가의 소설을 접하면 이상한 감동을 받는다. 너무나 잊히고 시효까지 끝났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전히 유효한 소재이자 주제의식으로 다가오고, 세상의 변화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우직한 글걸음을 옮기는 작가의 소신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작가들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길을 망설임 없이 가고, 자신의 문학적 야심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내가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를 칭찬한 이유는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