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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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창비라는 에콜에는 입 없고, 빽 없는 이들을 재현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있었다. 이들의 전쟁같은 나날을 구체화화면서 그 안에 핏빛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바꿀지도 모르는) 건강성과 운동성이 엄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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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3-09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품 평과는 동떨어진 군소리를 적었는데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세태소설의 강점과 미덕을 간직하고 있는 좋은 작품집이라고 생각한다. 비유를 들자면 좀 더 도회적이면서 냉소적인 김세희(˝가만한 나날˝)를 보는 느낌이다. 다만 오래전 창비라는 에콜에 있었던 그 경향성과 가치지향이 이 소설집에도 있는지 약간의 의문이 들어서 위와 같은 군소리를 남겼다.
해설자는 작품집 말미에 ˝지금 한국문학에 새롭게 요구되고 갱신되고 있는 것은 센스의 혁명˝이며 무비판적이지는 않으나 무모하지도 않은 이른바 ‘소확행‘을 중시하는 장류진의 작품 속 인물들을 긍정하고 예찬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말을 하자면, 이는 이 작품집을 세태소설의 묶음으로 간주했을 때만 획득될 수 있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즉 장류진 소설가의 펜끝이 세태 포착에만 한정될 때 그의 펜끝은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우울하며, 적당히 타협적이며, 적당히 센스를 갖춘 인물들을 형상화하는 선에서 그치며 더 나은 사회와 구조에 대한 심화적인 사유가 들어설 자리는 엷어진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적당히‘이지 ‘더 나은‘이나 ‘더 나쁜‘이 아니다. 그쪽(나은/나쁜)은 일상에서 금단의 지역이자, 극단의 지점이기에 고려할 가치가 적기 때문이다. 세태소설의 세계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시스템에 적응한 범인犯人이고 그 외의 인물들(반골, 저학력자, 저소득자, 무연고자 등등)은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주변화된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다.
장류진의 소설들을 읽고 나니 몇몇 소설 속 캐릭터들이 그리워졌다. 하나는 김금희의 단편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조중균이고, 다른 하나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바틀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