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각 편마다 내용적인 흥미로움은 없는데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충일하다. 이러한 집필 방식이 시대의 흐름이 된 듯한데 몽환적/애도적/불안적인 분위기를 ‘이쁘게‘ 가공하려는 역량들은 보이고 가열함이나, 예리함은 잘 안 보인다. 스타일(만으)로 문학성을 획득하기란 참 지난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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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2-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관심이 갔던 작품은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라는 소설이었다. 미문으로 수려한 풍경화를 직조하면서 그 안에서 현실과 꿈이 어떻게 착종하고 착란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소설이었으나 그럼에도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돌올했던 이유는 요즈음 흔히 보이는 지적이거나, 애상적이거나, 애정 갈구적인 성향의 글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작중에 나오는 ‘삶이 죽음의 연습이며, 꿈이 삶의 연습‘이라는 저자의 저의가 엿보이는 말은 그다지 새뜻하게 읽히지 않는다. 장자의 호접몽은 둘째치더라도 삶과 그것이 대비되는 지점ㅡ 그것을 죽음이라 부르건 꿈이라고 부르건ㅡ의 간극을 허무는 류의 작품들은 ‘간단히‘ 초월주의나 허무주의로 점프하기 쉽다. 이러한 초월/허무주의는 인간사를 심도 있게 고찰하면서 내놓은 심층적인 결론(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이 아니라 대조되고 대비되는 것들의 차이를 ‘손쉽게‘ 뭉개버리면서 만들어내는 작위적, 기만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이 작가의 수려한 문장력과 설계가로서의 면모는 호평하고 싶지만 그 이가 추구하는 주제와 정서가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뛰어나게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