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은 발효기 앞에 멈췄다. (산란계) 병아리들의 최종 목적지였다. 발효기는 농장에서 발생하는 가축의 분뇨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설로 높이 7M, 지름 1M 80CM 정도의 은색 원통이다. 내부에서는 회오리형 칼날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흙과 분뇨를 넣고 3개월 정도 발효시키면 토양에 직접 살포해도 되는 수준의 비료가 됐다. 먼저 흙과 분뇨장에서 퍼온 시꺼먼 닭똥을 채워 넣었다. 다음으로 자루를 풀고 병아리들을 쏟아부었다. 병아리들은 마대 자루만 한 동물의 사체인 양 커다랗게 덩어리진 채 떨어졌다. 여전히 살아 있는 병아리들이 있었지만 쏟아지는 동료들의 사체 속에 파묻혔다. 부화장에서부터 이어진 삐약 소리는 우리가 한참을 걸려 모든 병아리들을 집어넣고 마침내 발효기를 작동시킨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런 병아리 덩어리들이 똥과 뒤섞이는 동안에도 삐약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삐약 소리는 농장장이 사무실로 돌아간 다음에도, 우리가 발효기 주변을 청소하고 떨어진 병아리들을 주워 모아 집어넣은 다음에도, 계사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근무가 끝나고 식당으로 내려갈 때도 계속 들려왔다. 빌어먹을 삐약 소리는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마냥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는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새벽 계사로 올라갈 때도 발효기 안에서 울리는 병아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ㅡ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 중에서

 

 

저자는 실제로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부화장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위 인용글은 그러한 경험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육계鷄를 제외한 나머지 병아리들, 산란계 수평아리나 병이 든 병아리들은 대부분 회오리 칼날에 몸이 잘려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육계 농장의 최대 지출은 사료비인데 육계 이외의 병아리들에게까지 모이를 먹인다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먹는 육계는 자라는 속도가 다른 닭들보다 훨씬 빠르며, 그만큼 이윤을 보장해 주는 동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라는 산문집에서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끔찍하다.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아 2019-01-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 무언갈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언제나 이지적인 글, 비평 감사합니다.

수다맨 2019-01-21 09:55   좋아요 0 | URL
이렇게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