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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성문화사 - 세계의 숨겨진 성문화 이야기
후쿠다 카즈히코 지음, 임명수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5월
평점 :
지금처럼 찌는 듯한 더위나 살을 에는 추위가 아닌 봄, 가을에 나는 보통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걷는 경로가 주로 골목길인 관계로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들고 읽으면서 걷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끔은 들고 다니면서 못 읽는 책이 있다.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예술관련 서적과 성(性, Sex)과 관련된 책이다. 물론 그림 한 장 없이 글로만 구성된 책은 예외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의 정서에 성(性)과 관련된 책을 공개적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섹슈얼리티 性문화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자행되거나 유행되었던 성과 관련된 문화를 무려 236가지나 다루는 정말 보기 드문 책이다.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정상적인 성행위 보다는 상식에서 벗어난 수음(자위), 동성애, 시간(屍姦), 집단혼음(그룹섹스), 그리고 사디즘, 마조히즘과 같은 변태 성행위에 대한 사실들을 정치·사회·문화적 역사, 문학, 종교, 민속학, 미술사, 복장사 등 광범위한 역사적 자료를 검증하여 실증한 것을 토대로 기술되었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세계의 숨겨진 성문화 이야기'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책이다.
책은 사실 여성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는 이야기지만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춘의 유래에서부터 동성애의 유래, 고대의 피임법, 불륜의 역사들, 화장술, 고대 인도와 중국의 성문화 등 고대의 성문화로 시작된다. 이후 책은 중세, 근세, 근대, 현대로 각 시대에 따른 성과 관련된 문화의 변천이 소개되지만 특정시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도 다수 다룬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역사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 클레오파트라, 플루타르크 등 고대 인물은 물론이고 중세의 보카치오, 에라스무스 등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는 근세, 근대,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각 각의 내용마다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 또는 판화 등을 실어 재미를 더해 주었고, 인명이나 특정 단어에 대한 각주가 각 장마다 배치되어 이해를 도와주었다. 특히 각 에피소드가 2장으로 정리된 것은 누구 말마따나 성에 관한한 잡학 사전임을 자처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일찍부터 성 해방을 이룬 나라의 이야기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서독,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 나라에서 매춘과 포르노 잡지가 해금되었지만 성범죄와 매춘이 오히려 줄어들었나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은 지금도 규제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성기 사진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생각났다.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난리를 떠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현실은 그다지 선진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든다.
성문화를 유교 논리가 아닌 풍습이나 문화라는 개념으로 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양성평등의 문제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유사이래로 이어져 내려왔는지를 알게되면 놀랄만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