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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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를 읽으면서 문뜩문뜩 이방인의 뫼르소 엄마가 떠올랐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p135" '이방인'


요양원에서 애인을 만든 뫼르소의 엄마와 90세에 암 선고를 받고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결단을 내리는 노마 할머니를 이해한다.
카뮈의 말처럼 죽음이 가까이 온 순간 느끼는 해방감, 자유다. 그래서 다시 제대로 살아볼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 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것 아닐까.

노마 할머니의 책을 읽기 전에는 할머니가 아주 쾌활하고 적극적인 분이실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는 할머니는 그래야 한다는 선입견인지도 모른다.
노마 할머니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의 의사 표현에 서툴고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남편이 죽고 암 선고받기 전까지는.
그러나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길위의 삶을 살던 아들 부부가 '요양원으로 가실래요? 저희와 여행을 하실래요?'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같이 여행을 떠나겠다고 간단히 말씀하신다.
우리나라에서 90세 노인이 캠핑카를 타고 전국 일주를 떠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들린다.
그들에게도 역시 그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암 선고를 받은 아흔 살의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이라니.
그러나 아들 부부는 자신들의 삶이 늘 그렇게 여행하는 삶이었으므로 무모해 보이지만 어머니도 승낙을 했기에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다.

어머니는 아주 태연하게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포즈를 취했는데 얼굴에는 온통 장난기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때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알고 있던 것 이상의 생기발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71

아들은 여행 중에 장난도 농담도 즐기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어머니의 그동안 알지 못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모르는 이런 점이 있구나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과 동시에 무심했음을 알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맛있게 한 모금 마시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요양원에 들어갔더라면 결코 이런 걸 맛볼 수 없었을 텐데 정말 좋구나"p79

병원에서 암 투병을 하지 않고 평생을 여행이라고는 다녀보지 못하고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에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해볼 용기를 낸 할머니가 멋지다. 정말 할머닌 1년 동안에 누군가는 평생 걸려도 못할 다양하고 멋진 경험을 아들 부부와 함께 하게 된다.
그중 가장 멋진 것은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탄 게 아닐까.
남편의 꿈을 대신한 것이기도 했다. 아들 팀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며 열기구 광고지가 곳곳에 있음을 보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항상 열기구를 타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타지 못했다는 대답을 듣는다. 부모님의 다른 모습을 늦게야 보고 이해하게 된다.


"세상에! 파울로 코엘료!"
사진 속의 남자는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연금술사>의 작가였다 p182

할머니와 떠난 여행을 아들의 아내인 라미가 페이스북에 올리자 노마 할머니는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많은 낯선 사람과 장소에 초대받아
멋지고 즐거운 여행을 보낸다.
평생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할머니는 1년 동안 후회 없을 만큼 여한 없이 다 해본다.

휠체어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앉아 미소를 띠고 눈에는 생기가 넘쳤던 것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여행은 다른 많은 힘든 사람들에게도 공감과 용기와 도전을 주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미스노마는 숨이 붙어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은, 마지막 순간의 욕망대로 멋지게 살다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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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소프 - 에로스와 타나토스 현대 예술의 거장
퍼트리샤 모리스로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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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메이폴 소포는 어린 시절부터 기이한 것에 매력을 느꼈다.

유년기의 기억에서는 가톨릭 교회와 코니아일랜드를 꼽았는데 놀이공원에서 그는 기형 인간 전시를 좋아했다. 훔쳐보려는 그를 저지하는 할머니에게 로버트는 "뭔가를 보고 싶어 하는 당신을 막는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기이하고 금지된 것들에 호심이 있었던 그는 부모의 벽장에 숨겨진 무삭제판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누드 잡지를 몰래 훔쳐보곤 했고

게이 포르노 잡지를 훔치려다 체포되어 심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게 무엇이건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에 노출되면 당연히 생기는 반응이죠. 나는 뱃속 깊은 곳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안의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든 예술로 도입하여 승화시키고 싶었던 걸까?

그의 인생에서 독특한 세계는 그의 사진 예술보다 더 흥미로워 보인다.

앤디 워홀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는데 타인에게는 규정하기 힘든 예술가를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라 여겼다는 것 또한 재밌다.

메이플소프가 '내 눈을 틔어준 첫 사람'이라고 말한 연인이자 동지인 패티 스미스에게 찾아낸 것이 도플갱어라는 것도.

정신병 환자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내면에 품은 활기와 창조력에 매력을 느낀 것은 메이플소프에게도 그녀 같은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 리처드만큼 차남인 로버트조차 아버지의 큰 영향력으로 동성애 성향을 오랫동안 비밀로 묻어두려 했다.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광고 디자인 전공에서 그래픽아트로 바꾸고 싶어 진짜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설득하지만 아버지는 '예술가가 되면 생활비를 어떻게 벌건데? 수업료를 내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냐?"라는 호통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전공선택과 진학에서도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빚지만 결국

큰 아들은 베트남에 복무하다가 만난 몸을 파는 한국 여자와 결혼했고 정신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패티 스미스와 결혼한 차남에게 엄격한 아버지 해리도 무릎을 꿇는다.

1964년 ROTC 사관 후보생들의 병영 무도회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데이트 상대이고 무도회 여왕으로 뽑힌 낸시 네메스는 그를 세심하고 차분하나 소극적이고 소심한 남자, 전형적인 착한 남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랫 인스티튜트 1968년 졸업생 케니 티샤는 "로버트의 변신은 놀라웠습니다. 어느 날에는 ROTC 차림이었다가 다음 날에는 양가죽조끼와 러브 비즈 차림으로 캠퍼스를 걸어 다니고 있었죠."라고 말했다.

논란을 일으켰던 아티스트의 전기는 그의 어두운 세계뿐 아니라 그의 삶과 함께 했던 이들의 욕망과 삶을 드라마틱 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메이플소프가 동성애자고 사진가로 분투한 시기는 1960년대 역사가 급변하던 시대와 맞물려있어서 동성애자들의 귀리도 예술사진으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때였다.

1970년대 자유를 분출하던 때를 거치며 뉴욕의 최고 스타가 되어 현시대에 와서 뉴욕을 대표하는 현대 예술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의 바람대로 된 것이다.

뜨거운 논란과 악명만큼 높은 영향력이 있는 인물의 전기에서 풍부한 이야기가 넘쳐서 엄청 재밌게 읽을 수 있다. 700페이지가 좀 부담스럽긴 해도 꽤나 매력 있다.

가톨릭 중산층 평범한 가정에서도 그처럼 강렬하며 기묘한 사진작가가 태어났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를 중 폭한다.

결국 그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서 어떤 것은 순수하고 어떤 것은 흠결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설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메이플소프 의뢰로 쓰게 된 평전에서 저널리스트인 모리스로는 "그의 인생 전체는 탁했고, 잿빛이었으며 도덕적으로 모호했다."라고 말한다.

#현대예술의거장 #메이플소프 #포토그래퍼 #예술가 #사진 #사진작가 #패티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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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 대한민국이 사랑한 사진가 조세현이 전하는 찍사의 기술 혹은 예술가의 시선
조세현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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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나 잘 찍는 시대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 찍는 일은 쉽고 편해졌다.

사진가가 전하는 찍사의 기술과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진가의 철학은 무엇일까.

찰나라는 말이 좋다. 그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의 세계는 매혹적이다. 40년 동안 사진가로 산 사람에게는 어떤 철학이 있을지 궁금하다.

멋진 사진은 덤이고 사진 잘 찍는 법도 배우게 된다. 모름지기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옳다.

조세현은 셀럽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고 한다.

사십 년을 사진을 찍는 사진가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도 사진 찍는 일이 재밌고 사진 잘 찍는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다고 한다.

중학생일 때 우연히 주운 필름은 그의 꿈을 향한 시작이었다.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갔다.

잡지사에서 일하며 패션 사진 전문가로 주목받기 시작하다가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업했다.

카메라의 기술적인 발전으로 흔들림 방지도 완벽하게 가능해져서 수전증으로 사진 인생이 끝날 것에 대한 걱정에서도 벗어난 것 또한 큰 운이다.

"큰 얼굴, 큰 눈동자, 큰 입술에서 느껴지는 영혼과의 교감은 실제 사람과의 대화보다 더 깊이 있고 진지하다."라며 자신은 무조건 큰 사진을 보여주길 원한다고 한다. 그 사진들을 통해 영혼의 교감을 한다니 큰 사진이 걸린 갤러리를 찾아가고 싶다.

재미도 있으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찍어야 할 얼굴과 자연을 찾아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외국에서는 '영 아티스트'라고 하면 보통 40대 중반 이상을 일컫는다. 20년 가까이 작업하고 자기 스타일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비로소 실험 정신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내는 사람을 영 아티스트라고 한다. 그전에는 작가도 아니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면서 나는 내 스타일을 고수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특유의 고집, 서바이벌 정신, 사진가라는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p54

20년 해야지 비로소 청년작가라는 말을 듣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40년 사진가의 인생을 산 작가는 운도 있었지만 혹독한 세월을 보내고 성숙해졌다. 20년은 노력해야 한다는 사진가의 일이 그렇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사진의 기본을 배우라고 말한다. 깊이 전문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기본을 알고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광과 친구가 되면 사진이 놀이가 된다. 늦은 오후 호수의 물 반사는 주인공을 위한 아름다운 무대가 된다 머리카락을 눈부시게 하는 반사도 역광으로 만나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p196

<천사들의 편지>는 흑과 백의 만남, 빛과 어둠의 만남, 스타와 고아의 만남이다 흑백이 보여주는 격차는 원색적인 컬러와는 달리 사색적이다. p200

피사체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 생각한다. 가장 쉬운 사진이 최고의 사진이다. p207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일단 뭣이든 많이 찍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감상이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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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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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프리카 문학을 읽었던가. 나이지리아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아디치에를 먼저 읽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의 첫 데뷔 소설인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재밌었고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작품으로 먼저 알려졌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100페이지 정도의 작고 예쁜 책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 역시 표지가 참 아름답고 사진에서 환하게 웃는 아다치에는 예쁘다.
이 책을 읽은 후에 어느 카페에 갔는데 히비스커스 차를 팔고 있는 걸 보니 반가웠다.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한 자유. p27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에젠두와 혹은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것은 아버지를 격하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p32

"우리가 아기를 돌볼 거야 녀석을 보호할 거야 "p36

"하느님이 도우실 거예요"이렇게 말하면 아버지 가 좋아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곤 손을 뻗어서 내 손을 잡았다 내 입안에 가득 설탕이 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39


이 소설에서는 나이지리아 상류 가정의 억압받는 가정에서 침묵하고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어머니와 두 자녀가 그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이 담겨있다.
아들 자자가 아버지 정원의 빨간색 히비스커스를 몰아내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상징하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심은 용기가 처절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희생을 통해 얻어야 하는 자유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러나 어머니를 보호하고 태어날 동생을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의 무게가 있기에. 그러나 현실에서는 강자가 계속 군림하고 약자는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소설이기에 어쩌면 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안주할 수도 있는데 벗어나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오빠와는 좀 다르게 딸 캄빌리는 아버지가 잘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 마음에 들려고 무척 애쓰고 아버지를 격하시키는 어머니의 발언도 싫어한다. 그 묘한 심리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머니의 유산이 아버지 때문이고 그로 인해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캄빌리는 심적 고통을 겪고 성적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 아버지 또한 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신문사 스탠더드의 발행인으로 군사 쿠데타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고향에서는 고장을 위해 일하는 자로 '오멜로라'라는 칭호를 받는 영웅이다. 가족을 벌한 후에 눈물 흘리고 뜨거운 포옹을 하는 것은 그 가족뿐 아니라 독자마저 혼란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과 자신의 아버지가 개종을 안 한다고 찾아뵙지도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부친의 친구로부터 '자네는 시체를 따라 무덤 속까지 들어가는 파리 같아!'라는 비난을 받는 빛나는 영웅이라기엔 너무나 측은한.


이페오마 고모는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서 회의 중인 아버지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오빠와 나를 꼭 안아 준 다음 떠났다.
그날 밤 내가 웃고 있는 꿈을 꿨다 내 웃음소리가 원래 어땠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내 웃음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페오마 고모처럼 깔깔대는, 칼칼하고 열정적인 웃음소리였다. p115


아버지의 캐릭터가 엄청 권위적이어서 끔찍하고 자극적이나 한편 흥미로운 인물이다.
자녀들의 일과표를 질서있게 꼼꼼하게 만들어 따르게 하고 어기면 벌을 준다.
자수성가해서 가족에게 힘을 행사하는데 그 정도가 비교불가다. 그가 보여주는 지나친 광신도의 모습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릴 뿐 자신이 하느님이다.
나름 그도 할 말은 있겠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억압받으며 복종하는 자녀들은 모든 물질적인 혜택은 누리나 자유롭지 못하다.
웃음소리마저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웃음을 웃어야 했을 소녀 캄빌리와 오빠 자자, 어머니가
어떻게 독립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고모 이페오마는 그들의 독립을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페오마 고모는 '여자의 인생은 남편이 있어야 완성되는 거예요'라는 캄빌리엄마에게 '때로는 결혼이 끝나면서 인생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p360

나는 나에게 아마디 신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 내가 에누구에서 다니는 성당을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긴 이유가 거기 신부가 아마디 신부와 같은 성로 선교 신부회 소속이기 때문인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간다. p361

우리는 무엇인가에 이유를 붙인다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거리낌 없이 하는 것에 용기가 없을 때 그러지 않을까. 억압 속에서 침묵하다가 이제 당당하게 말하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캄빌리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은 듯해 보인다.
캄빌리의 이후의 삶은 분명 아버지가 죽기 전과 다를 것이다. 그 변화가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작은 변화가 성장의 시작이다.

책에서 나온 아버지 유진만큼의 억압은 아니더라도 부모라는 권력으로 자녀에게 부당한 억압을 가한 적이 없는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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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은 너무해 너무해 시리즈 2
조리 존 지음, 레인 스미스 그림, 김경연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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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워드, 네 목은 진짜 대단해. 놀라운 일을 해내잖아. 넌 내가 일주일 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바나나를 십초만에 따 줬어.
그러게 고맙다, 사이러스. 네 목도 근사해. 우아하고 품위가 있어. 등딱지하고 잘 어울려.
정말 특별한 말을 해 주는구나, 애드워드.
우리 둘 다 목이 썩 괜찮지, 애드워드?
응, 사이러스. 지금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은.] 기린은 너무해 중에서


목이 너무 길어서 기린은 괴롭다. '너무 길어. 너무 잘 휘어. 너무 가늘어...너무해' 하지만 그것은 기린의 입장에서 그렇지 타인의 입장에서는 큰 키도 긴 목도 우월한 장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단지 남과 다른다고 불평하는 것 보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게 좋다는 걸 기린은 친구를 도와주며 깨닫는다. 엄마가 아무리 칭찬해도 불평하며 다른 동물의 목만을 부러워하고 창피해 숨어 버리고 싶어했다. 심지어 거북이의 목도 부럽다고 한다. 거북은 닿는 것도 잡는 것도 둘러보는 것도 못하지만 조금씩 자신의 목을 받아 들이고 할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절대로 할수 없는 일을 기린에게 부탁한다. 기린은 자신의 목을 칭찬해주는 친구를 만난다. 자신을 알아 봐주는 친구로인해 행복해진다. 가장 긴 목을 가진 기린과 가장 짧은 거북의 만남은 극적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중요한 타인이 될 수있는가가 극적인 소통이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한다. 제인에어가 헬렌과 템플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거지소녀 로즈가 자신을 한없이 하찮은 존재로 깎아내리는 플로를 만나지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이 다가 오는 것인데 나는 누구에게 얼마큼 중요한 타인으로서 다가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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