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아프리카 문학을 읽었던가. 나이지리아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아디치에를 먼저 읽게 되었다.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다.그의 첫 데뷔 소설인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재밌었고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우리나라에서는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작품으로 먼저 알려졌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100페이지 정도의 작고 예쁜 책이다.보'라색 히비스커스' 역시 표지가 참 아름답고 사진에서 환하게 웃는 아다치에는 예쁘다.이 책을 읽은 후에 어느 카페에 갔는데 히비스커스 차를 팔고 있는 걸 보니 반가웠다.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한 자유. p27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에젠두와 혹은 다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것은 아버지를 격하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p32"우리가 아기를 돌볼 거야 녀석을 보호할 거야 "p36"하느님이 도우실 거예요"이렇게 말하면 아버지 가 좋아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곤 손을 뻗어서 내 손을 잡았다 내 입안에 가득 설탕이 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39이 소설에서는 나이지리아 상류 가정의 억압받는 가정에서 침묵하고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어머니와 두 자녀가 그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이 담겨있다.아들 자자가 아버지 정원의 빨간색 히비스커스를 몰아내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상징하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심은 용기가 처절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희생을 통해 얻어야 하는 자유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러나 어머니를 보호하고 태어날 동생을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의 무게가 있기에. 그러나 현실에서는 강자가 계속 군림하고 약자는 그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소설이기에 어쩌면 가능한 일이다.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안주할 수도 있는데 벗어나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오빠와는 좀 다르게 딸 캄빌리는 아버지가 잘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 마음에 들려고 무척 애쓰고 아버지를 격하시키는 어머니의 발언도 싫어한다. 그 묘한 심리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머니의 유산이 아버지 때문이고 그로 인해 동생을 잃은 충격으로 캄빌리는 심적 고통을 겪고 성적도 떨어진다.하지만 그 아버지 또한 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신문사 스탠더드의 발행인으로 군사 쿠데타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고향에서는 고장을 위해 일하는 자로 '오멜로라'라는 칭호를 받는 영웅이다. 가족을 벌한 후에 눈물 흘리고 뜨거운 포옹을 하는 것은 그 가족뿐 아니라 독자마저 혼란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과 자신의 아버지가 개종을 안 한다고 찾아뵙지도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부친의 친구로부터 '자네는 시체를 따라 무덤 속까지 들어가는 파리 같아!'라는 비난을 받는 빛나는 영웅이라기엔 너무나 측은한.이페오마 고모는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서 회의 중인 아버지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오빠와 나를 꼭 안아 준 다음 떠났다.그날 밤 내가 웃고 있는 꿈을 꿨다 내 웃음소리가 원래 어땠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내 웃음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페오마 고모처럼 깔깔대는, 칼칼하고 열정적인 웃음소리였다. p115아버지의 캐릭터가 엄청 권위적이어서 끔찍하고 자극적이나 한편 흥미로운 인물이다.자녀들의 일과표를 질서있게 꼼꼼하게 만들어 따르게 하고 어기면 벌을 준다. 자수성가해서 가족에게 힘을 행사하는데 그 정도가 비교불가다. 그가 보여주는 지나친 광신도의 모습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릴 뿐 자신이 하느님이다. 나름 그도 할 말은 있겠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억압받으며 복종하는 자녀들은 모든 물질적인 혜택은 누리나 자유롭지 못하다.웃음소리마저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웃음을 웃어야 했을 소녀 캄빌리와 오빠 자자, 어머니가어떻게 독립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고모 이페오마는 그들의 독립을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페오마 고모는 '여자의 인생은 남편이 있어야 완성되는 거예요'라는 캄빌리엄마에게 '때로는 결혼이 끝나면서 인생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p360나는 나에게 아마디 신부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 내가 에누구에서 다니는 성당을 성 안드레아 성당으로 옮긴 이유가 거기 신부가 아마디 신부와 같은 성로 선교 신부회 소속이기 때문인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간다. p361우리는 무엇인가에 이유를 붙인다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거리낌 없이 하는 것에 용기가 없을 때 그러지 않을까. 억압 속에서 침묵하다가 이제 당당하게 말하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캄빌리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은 듯해 보인다.캄빌리의 이후의 삶은 분명 아버지가 죽기 전과 다를 것이다. 그 변화가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작은 변화가 성장의 시작이다. 책에서 나온 아버지 유진만큼의 억압은 아니더라도 부모라는 권력으로 자녀에게 부당한 억압을 가한 적이 없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