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 - 살림의 그물 11
E.F. 슈마허 지음, 골디언 밴던브뤼크 엮음, 이덕임 옮김 / 그물코 / 2010년 3월
절판


O 그렇지만 그는 사회 일부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 가난을 유명해질 때까지 창조적 영감을 공급받는 시간을 갖기 위한 일시적 발판으로 택하거나 단순히 그들의 부모들이 속한 사회로 돌아가기 전에 휴가를 갖는 정도로 생각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O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히 소유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재산이 뜻하는 바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 부란 물질과 재산, 그리고 돈의 소유를 말하지만 행복이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의 선물이기 때문이다.-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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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 중에 한의사가 한 명 있다. 나보다 두 살 위이니 대략 비슷한 세대다. 부인도 같은 대학을 졸업한 한의사다. 부부 한의사이니 당연히 벌이가 괜찮을 것이다. 집은 신도시에 있다. 이 정도면 대략의 선입관이 잡히는 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볼 때마다 그런 선입관을 바꿔 놓았다. 일단 지극히 환경 친화적으로 산다. 먹을거리부터 소비생활이 엄격했는데, 이건 뭐 한의사니까. 그 다음, 아이들 사교육을 하나도 안 시킨다. 그리고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한다. 알고 보니 집이 전세다. 그 전세금 빼면 남한강 근처에 집 사서 살 거라고 한다. 폐교될 뻔한 초등학교 하나를 주민들이 되살려 놨는데 아이들을 거기 보낼 거란다. 결정적인 건 이것이었다. 진료 시간을 일주일에 2번으로 줄여 버렸다. 일하는 시간 줄여서 아이들하고 시간 더 보내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할 거라고 한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요즘 ‘진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시다시피 진보는 지금 붕괴되고 있다. 정치세력으로서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대운하가 공약이니 아니니, 박 모 씨가 네 편이니 내 편이니, 아무리 심드렁하게 봐도 선거판은 유례없이 저질인데, 진보는 여전히 무기력하다. 심지어 요즘 같아서는 ‘차떼기’가 재현되어도 똑같을 거라고들 하지 않나.

원인이 무엇이고 대안은 무엇이고, 이런 고담준론은 솔직히 지겹다. 다만 이런 생각은 요즘 자주 한다. 어떤 생활이 진보적인 생활인가, 어떤 태도가 진보적인 태도인가, 그리고 이런 자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 요즘 들어 많이 변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투표장에 가서는 진보정당을 찍고 컴퓨터 앞에서는 주식투자를 위해 뉴스를 검색하는 사람보다는, 저 일하기 싫어하는 한의사가 훨씬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취향은 모른다. 어쩌면 2번을 찍고 다닐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투표장에 안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진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돈과 물질을 추구하는 삶은 경쟁과 속도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가치와 여유를 추구하는 삶은 공동체와 나눔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운하 뉴스를 자기 투자정보로 활용하는 태도나, 법질서를 지키면 GDP가 5% 상승한다는 의식구조나, 사실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주장을 나름대로 펴 보는 이유는, 이 지면이 PD들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을 민감하게 맞춰야 하는 게 방송이지만 또한 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도 방송이다. 방송의 소재나 주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점점 짧아지는 코미디 코너, 아침 일찍 편성된 드라마, 오락과 정보를 결합한 포맷, 이런 거 하나 하나가 사실은 사회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저 콘티와 원고에 충실했을 뿐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의식을 재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길게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우리의 목표와 방법론에 대해 되돌아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프로그램에서 인간을 내세우면서 방법론은 비인간적인 게 아닌지, 세상이 한 걸음 나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PD들은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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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결혼을 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가끔 후배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에 "도대체 뭐 먹고 얼덯게 사느냐"라는 경제적 여러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듣게 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나 역시 그 동안 딸이 둘이나 태어나고 학부형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비롭기조차 하다. 교회에서 노동사목 실무자로 일하는 나의 경우도 경제적으로 수입이 적고 아내의 경우는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수입이 거의 없어 네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언제나 빡빡하다.

보통 노동자들이 월급날이면 인상을 찌푸리고 우울하게 동료들끼리 술 한잔 먹고 잊어버리려 애쓰면 다음날을 살아가는 것처럼 나 역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결혼 10년에 얻은 나의 결론은 가난하가 생존희 방법을 터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돈을 많이 벌어서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규모와 수준을 낮추어서 살면서도 품위 있고(?) 절도 있게 사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나는 어떡해서든지 증명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사실 그러한 생활태도를 가지게 한 것은 주변의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우게 된 것이라 나는 그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얼마전 한 후배가 결혼을 앞두고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 아무리 없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후배는 당장 1백만원도 없었다.
나는 후배가 기죽을 것 같아 내 경험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나는 결혼할 때 잘 믿지 않겠지만 새살림이 하나도 없었어, 장롱, 텔레비젼, 옷장, 냉장고는 마누라가 집에서 혼자 쓰던 것 가져오거나 주변에서 얻어서 썼어, 새탁기는 아예 없어서 결혼 초기에 매일 손빨래하느라고 혼났어. 기계는 처남이 해주고 반지는 금 한 돈짜리로 끝냈고, 양복 외에는 아무것도 안 샀어. 결혼식 때도 비디오 안 찍고 친구가 사진 찍어주니까 좋더라. 요새 젊은 친구들 야외촬영이다 뭐다 해서 하루종일 억지로 모델 하려고 돌아다니던데 난 정말 그거 보기 안 좋더라. 신혼여행도 친구들이랑 버스 타고 돌아다녔어, 그래도 지금까지 사는데 내가 너무 없이 산다고 후회해본 적이 없어. 더 추억에 남더라고." 나는 내 생활의 경험을 과장해서라도 아무것도 없이 결혼하는 자신의 처지를 힘들어하는 후배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너희들 당장 돈 없으면 지하방도 괜찮아, 나도 지하에서 7년 살았는데 살만 하더라고, 헝그리 정신 있잖아. 배고픈 사람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맛을 알 수 있다고, 집안 어른 덕보면서 자기 손 까닥하지 않고 도움 받아 결혼하는 사람들보다 주변의 선, 후배가 한데 힘을 모아 결혼을 준비하는 너희들이 휠씬 멋있는 부부가 될 거야."라며 마음을 풀어주려고 애써 보았다.

사실 그렇다. 자신의 삶을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 하겠다고 작정한 바에야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다. 어느 한구석이 비어있어야 그 비어있음으로 다른 사람을 채울 수 있고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나누는 마음이 더 크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동사목에서 가까운 노동자들이 결혼할 때 보면 현장에서 아무리 오래 근무했어도 전세방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 결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걱정하며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어느 여자 후배가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 자신이 버는 돈을 고스란히 바쳤고 오히려 집안 빚까지 갚아가면서 살아갔던 성실한 노동자였다. 결혼을 앞두고 그는 막막해서인지 얼굴이 항상 우울했다.

그는 노동사목에 찾아와서 아무리 없이 살지만, 그래도 방은 두 칸 짜리를 얻고 싶다고 했다. 왜냐하면 회사 친구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방 하나를 내어 줘 재워주고 싶다는 것이었고, 주변의 사람들의 경우 보통 방 두칸을 얻어서 사는데 자신의 경우 지금까지 공장엘 다녔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며칠을 고민하더니 남편이 될 친구가 사는 좁은 한칸짜리 자취방을 새롭게 꾸며서 그냥 살기로 했다면서 그리고 자신들의 결혼비용의 일부를 지역노동 단체에 쓰기를 원한다면서 적지 않은 돈을 보내주엇다. 나는 그 후배가 참 대견했고 그 후로 그 후배의 그런 결단은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었다.

사랑의 출발인 결혼마저도 자본주의의 가치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대한 익숙함과 소유의 습관에 물들게 되고 하루하루 살다보면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여가고 더 가지게 위해 애쓰며 산다. 드러나 그런 만큼 내가 꿈꾸었던 이상은 하나씩 늘어나는 소유만큼 잃어버리고 산다.

끊임없이 소유할 것인가.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행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갈등한다. 가난하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방법이 더 가치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결국 어떤 선택인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는 몫이다.

 
http://www.jsari.com/ 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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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인터뷰 특강 시리즈 4
진중권.정재승.정태인.하종강.아노아르 후세인.정희진.박노자.고미숙.서해성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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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헌데 일상은, 누구나 동의하듯 자존심과 치르는 한 판 승부의 연속입니다.

- 나는 동의하지 않는데? ㅎㅎ '누구나 동의'한다는 말.. 참...-6쪽

O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는, 결국 '남'에 대한 태도로 연장된다. 자신에 대한 존경, 즉 '자존'의 결여는 '남'에 대한 존경에 대한 부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자존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건전한 태도'라고 풀어도 좋을 듯 하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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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어린시절 - 개정판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5년 8월
구판절판


O 완벽주의자에게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바로 휴식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또는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조건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러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 일반적인 기준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변명한다.

- 나 역시 민망하게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모른다. 내게 휴식이란 심적 휴식을 의미하지, 육적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에 누워 TV를 시청하는 것은 휴식이 아닌 게으름으로 인식된다. 다른 이는 허용할지 몰라도, 내 자신에게는 한심함으로 다가온다.
위 문장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다른 이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게 많은 반면, 내게는 해야할 것들만 남아있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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