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은 언제나 그랬다. 통보의 형식이든 합의의 형식이든, 실질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우리 헤어지자.”거나 “나 이사할래.”거나, 결국 수습은 상대방 혼자의 몫이다. 천재지변에 준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변화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다. 휴대폰에서의 번호 삭제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고, 함께 영화 볼 사람을 따로 찾아야 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된다. 괴로움에 미칠 듯이야 하겠지만, 결국 술에 쩌는 것도 제가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아무도 먼저 알아주지 않는 ‘내상’이라는 것,  이별은 그래서 더욱 극심하게 아파온다.

물론 잡아보기도 할 지 모른다. 격렬하게 키스를 시도하거나, 혹시 섹스를 할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사람을 위한 맛있는 요리를 할지 모른다.

만용을 부릴 수도 있다. ‘제까짓게 어딜 가?’라면서 담담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만용이 만용으로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당황스러움이란. 잡으려면 그 때 잡았어야지….

낙하하는 저녁은 이별 이야기이다. 슬퍼서 엉엉 우는게 아니라 미치도록 담담한 소설이다. 목이 메여오는 것도 아니고 눈물이 그렁거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사랑할 때와 다름없이 그 사람이 청소를 하는 시간에 청소를 하며, 그 사람의 새로운 전화번호를 전화기에 기억을 시킨다.

하지만 그것으로 비어짐이 채워지면 얼마나 좋겠누. 그러함으로 이별이라는 사건을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누. 아니 우리가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누. 하지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물론 돌아갈 장소를 잃는 것’(에쿠니 가오리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 걸’중)임을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고 나서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읽은 지가 너무나도 오래된 소설. 그 탓에 나는 다른 이야기들이 가물가물하다. 작가 에쿠니가오리에게 감탄을 하다가, 역자 김난주를 기억하게 만든 책. 그만큼 번역이 잘 되어있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하드카바가 아깝지 않다.

 

- 2006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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