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낯선 바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6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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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말수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쉬는 시간이면 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무엇이든 성실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도 나는 자신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처럼 대해졌다. 한 번도 티 낸 적은 없지만 나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스스로도 어른이 되고 싶었고,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었다. 그 시절을 지나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볼 때, 그때의 나는 결코 어른스럽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나 역시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

 

그렇게 어른스러움에 집착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내가 봤을 때 <열흘간의 낯선 바람> 속 주인공 이든이는 퍽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빛나의 마지막 문자에 화를 내거나 진실을 밝히는 대신 죄책감을 느끼고 비밀을 지켜주는 모습, 엄마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여행에 진심으로 분노하며 내팽개치는 대신 결국 그 길 위에 오르는 모습, 낯선 이의 제안과 이야기에 벽을 치는 대신 조금씩이나마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 광활한 자연 속에서 외면하고 반항하는 대신 스스로를 마주볼 줄 아는 모습.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시간과 상황 속에서 나는 이든이의 성숙함을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으로 진행됨으로 작가의 문체와 묘사가 이든이의 시각이라고 치면 그만큼 깊은 눈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일명 뽀샵으로 만들어낸 사진을 SNS에 올리는데 열을 내거나 성형을 통해 자신감을 얻겠다고 생각하는 것, 허단에게 틱틱 대는 행동 등에서 비춰지는 단순함이 이든이 아직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속에 감춰져 있는 단단함은 이미 어른과 다름없었다. 내 눈에 비치는 이든은 끝내주게 멋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든을 응원했다. SNS속 관계가 현실에서의 관계보다 훨씬 좋다는 이든의 말에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네 진짜 매력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고, 바람 속에서 춤을 추는 이든의 모습에 정말 멋지다고, 자랑스럽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너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고 그 매력은 전자기기 속에서가 아니라 진짜 네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다. 이든이 뿐만 아니라 이든의 낯선 사람 멤버인 허단과 우석 오빠, 핑크할머니 모두에게 한 마디씩 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힘이 들었다.

 

하지만 문득 만약 진짜 이든과 진짜 허단, 진짜 우석 오빠와 핑크할머니가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SNS를 통해, 혹은 텍스트를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위로를 건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앱 중에서도 익명을 통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위로받는 것이 있는데, 비록 댓글을 달 때 이 말이 이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진심을 꾹꾹 담아 쓰기는 해도 분명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내 바로 앞에 있다면, 내가 내 귀로 그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이든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이든의 진짜 모습과 매력을 알 수 있었을까. 고민해 보지만 답은 없다에 더 가깝다. 나 역시 현실의 관계를 SNS속 관계보다 더 버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스러움으로 시작해 참 멀리까지 온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있던 내용이었고 이 책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고민과 생각이었다.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 역시 이든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조금 더 어른스러워질 수 있기를, 사람과의 관계를 진심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마음먹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아이라고 하기엔 조금 노숙(?)한 단어선택과 시각이 이따금 걸리긴 했지만 그것도 다 이든의 매력이라 생각하니 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멋진 책이었고, 멋진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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