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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려는 용기가 필요해 - 카이스트 교수가 가르쳐주는 학교와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것
노준용 지음 / 이지북 / 2015년 12월
평점 :
영화 <가필드>를 처음 봤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사람보다 더 뚜렷하고 풍부한 표정을 보이는 그 배불뚝이 갈색 고양이는 어린 내게 있어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였다. CG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던 때라 그 놀라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한동안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마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봤을 정도였다.
그런 나였기에 이번 책 <틀을 깨려는 용기가 필요해> 역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가필드의 표정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자체도 내게는 충격적이건만 어딘가 멀게만 느껴지는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꼭 금발에 푸른 눈일 필요는 없지만)이 아니라 친숙하디 친숙한 동양인이 그 화려하고 신비로운 할리우드 영화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의 이력만으로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저자가 훌륭한 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닌 법. <틀을 깨려는 용기가 필요해>의 매력은 저자의 이력이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에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 한 것들을 꾸밈없이 솔직한 말로 이야기 해준다. 연이은 불합격 소식에 시작된 삼수와 그로인해 황폐해진 자신의 모습도,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떠나게 된 유학’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시장의 차이와 그로인한 결과도 ‘넘사벽’이라며 분명하게 밝힌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정과 진단,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기까지 한다. 여기에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얻은 지혜와 자신이 쌓아온 것에 대한 자신감 역시 가감 없이 드러낸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자신의 삶을 시간 순으로 찬찬히 풀어내며 도전과 실패, 변화를 담아내는 이런 종류의 일반적인 에세이와 다른 구성에 불만을 느꼈었다. 중구난방이라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보였다. 1장에서는 자신이 겪은 실패와 그를 통해 얻은 지혜를, 2장에서는 자신이 보고 느낀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3장에서는 사람과 나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조언을,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는 자신감과 적극성 같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저자는 정확하게 분류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한다. 시간 순으로 자신의 삶을 풀어내는 이야기는 저자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며 공감하고 동의하도록 만드는 반면, 이런 식의 구성은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만의 방법으로 솔직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책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런 만큼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읽는 내내 감탄했다. 할리우드에 대해, 전공을 나누는 것의 무의미함에 대해, 리더와 매니저의 차이에 대해, 좋아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한 줄로 평하자면, 한 편의 책을 읽었다기보다 총 4부로 기획된 강의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책. 내게도 제법 의미 있고 색다른 경험이었던 만큼, 생각하고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히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객관성을 유지하며 조언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