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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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로 결혼과 출산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보내오는 청첩장이 늘어나고, 누구는 벌써 아이가 있다더라는 소식들을 듣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제로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끼리끼리라고(...) 나나 내 친구들은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대화는 대개 막연한 상상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나는 이런 결혼을 하고 싶어… 근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 끝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끝나기 일쑤라 나는 홀로 결혼 자체에 대한 생각을 더해보곤 했다. 우리의 삶에서 결혼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랑이 곧 연애가 되고 연애가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왜 자연스러운 흐름일까, 같은 생각들.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어느 하나 명확하게 끝나는 법이 없어 오히려 답답함이 가중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으면 사랑이 소멸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책을 만났을 때 어쩌면 그 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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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는 도시>는 과거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던 저자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로, 단순하게 말하면 사랑을 주제로 한 연애소설이다. 책은 신혼여행지에서의 고백으로 삶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영임과 하욱 부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우와 태윤, 은희, 용재, 네 남녀의 복잡한 관계와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에서 자신의 것을 찾으려 애쓰는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하게 말하면 연애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도시>는 각각 다른 세대의 인물들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연애상, 결혼상의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변화를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인지 이들의 사랑은 몽글몽글한 핑크빛 로맨스나 한순간에 삶을 뒤흔들어놓는 강렬한 로맨스 대신 차갑고 날 선 시선들로 담겨 있다.


먼저 영임과 하욱 부부의 이야기. 신혼여행 중에 남편의 삶이 거짓으로 점철된 것임을 알게 된 여자가 사랑을 믿지 않는다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10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사람을 흠칫하게 만든다. 첫 시작부터 무차별적으로 쏟아져내리는 냉소적이고 경멸 섞인 시선들은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을 안고 남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임은 결혼을 하고, 속았음을 알았음에도 이혼하지 않은 채 자식을 갖는 것에 집착하고, 결국 겉보기에는 완벽한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 살아간다. 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라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얽히고설킨 네 남녀의 이야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복잡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충동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모습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는 게 맞을까. 어떤 것이 진실인 것일까. 그들이 한 것은 사랑이 맞는 걸까. 이와 같은 온갖 혼란 속에서도 이들의 이야기가 '결혼'으로 종착된다는 사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면에 한나의 이야기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앞선 이들의 이야기가 결국 결혼으로 종착된다면 한나는 <결혼하지 않는 도시>라는 책의 제목처럼 결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려움 속에서도 홀로 아이를 낳아 아이와 둘이 살아가고, 그러한 삶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그의 모습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는 성소수자인 그의 친구 찰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사랑이 소멸된다고 생각하세요?(264p)"라고 묻는 태영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각기 다른 사랑과 삶의 모습은 보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마 현재 나와 같은 세대의 이야기라서 더욱 공감이 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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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는 도시>를 보면서 변화해온 시대상과 결혼상을 쭉 되짚어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앞으로의 삶과 결혼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명확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어떠한 가능성을 본 기분이랄까.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인물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느껴져서 조금 힘들었다. 독서를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이거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우울감에 몸도 마음도 축 늘어질 정도였다. 그나마 한나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한숨만 내쉬었을지도. 앞서 주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긴 했지만 자칫 <결혼하지 않는 도시>라는 책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만큼 극단적이었다.


그래도 마냥 핑크 핑크 예쁜 사랑 얘기가 아니라서,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또 그들의 이야기가 세대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펼쳐지는 대신 시점과 중심인물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전개되어 이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까지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켜 책에 집중하게 만들고 곱씹게 만들었다. 덕분에 새로운 자극과 여러 가지 생각을 얻을 수 있었으니, 예쁘고 직관적인 사랑 얘기 대신 새로운 양상의 이야기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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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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