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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게임
오음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평점 :
내가 아닌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제아무리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도 그가 느낀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할 수 없고, 그와 함께 같은 것을 보고 먹고 경험하더라도 그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완전히 똑같을 수가 없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고 부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더라도 그 속에는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이 있다. 어쩔 때는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족, 다른 생명체, 그러니까 외계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쏟아내는 대신에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언어로 손짓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너의 이야기가 나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의 손짓이 너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록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의지가 되어 두 눈을 감고도 나아갈 힘이 된다. 바로 <외계인 게임> 속 다섯 남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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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게임>은 저마다의 아픔과 사정을 안고 여행자들의 천국 파키스탄 훈자로 떠나온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옴니버스 소설이다. 각자 태어난 곳도, 현재의 직업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다른 다섯 청춘이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하면서 보내는 날들과 이곳에 오기까지의 사정을 각자의 시선으로 한 명씩 풀어낸다.
언뜻 보기에는 다섯 사람 모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존재들이다. 먼저 28세 중학교 국어 교사 김설. 엄격한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 밑에서 사춘기란 것도 모르고 자란 얌전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아버지의 바람대로 교사가 되었다가 뒤늦게 방황하는 사람이다. 32세 영상 번역가 남하나.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지만 책임감 있게 제 손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멋있는 사람이다. 40세 소설가 최낙현. 자기 세상에 심취하여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밤낮없이 괴로워하면서도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22세 대학생 전나은. 눈부시게 빛나는 청춘 그 자체로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해맑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29세 여행자 오후. 역시나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능글맞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일 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정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에 대한 생각은 백팔십도로 바뀐다. 가장 평범하고 무난해 보이지만 복잡한 사랑으로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보는 이가 겁이 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김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고단하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 남하나, 자의식에 가득 차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 빛바랜 눈물을 숨겨놓은 최낙현, 그 어떤 것에도 뛰지 않는 무미건조한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전나은, 그리고 누구보다 순수한 사랑을 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오후.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질수록 결국 이들 역시 완전한 타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계인 게임>은 이렇듯 완전한 타인이 모여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어울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된 모습을 보이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도 결국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실감하게 만든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타인이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고,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타인에 대해, 이해와 공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타인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서 힘을 얻고 있음을,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외계인 게임>이라는 제목 때문에 처음엔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의 소설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어떤 책보다도 생생한 현실감을 보여줬던 책.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참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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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읽고 쓴 글입니다.
우리의 삶에, 마침내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나는 지금 이곳에 서 있다.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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