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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금, 너에게 간다
박성진 / 북닻 / 2021년 2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쩌면 그게 그 사람과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이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 뒤가 서늘해지고 손끝이 떨리는 것 같은 이 가정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다. 긴급상황이 오면 하던 일도 모두 버려두고 현장으로 뛰어가야 하고, 스스로의 안전은 뒤로 한 채 타인의 생을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해야 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죽음 앞에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누군가. 그 수많은 누군가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너에게 간다>의 주인공 수일과 같은 소방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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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에게 간다>는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면서도 사명감으로 나아가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수일과 늘 그런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애리의 이야기다. 작가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건을 배경으로 두 연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고단하고 힘든 소방관의 삶과 그 곁에 함께하는 사람의 삶을 들려준다.
수일은 자신의 잘못도 책임도 아닌 죽음에 자책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오늘도 누군가의 생명을 살렸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소방관이다. 그런 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 애리가 있는데, 두 사람의 사이는 늘 삐걱거린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예사고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전화 한 통 걸어 긴급 상황이라 가지 못한다고 통보하듯 말하는 수일의 삶은 애리의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애리가 이별을 고하고 두 사람은 헤어지지만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우연치 않은 기회로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소방관의 삶을 살아가는 수일은 여전히 애리를 기다리게 하고, 수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애리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수없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마침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다림의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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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에게 간다>는 작가의 말까지 모두 합쳐도 87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에 종이책이 아닌 (only) e-book, 두 연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줄거리로 가벼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전개 역시 굉장히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쉽고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마냥 쉽게 볼 수 없는 것은 그 속에 사명감 하나로 끊임없이 희생하는 소방관과 그와 함께 희생할 수밖에 없는 연인의 아픔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제대로 보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힘든 일들의 연속과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로 할 때 그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괴로움, 소중한 사람을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임을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앞에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간다> 속에는 수일과 애리처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저의 불행을 새빨갛게 불태워 타인의 목숨까지 먹어치운 사람,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안전과 평화에는 눈 감아버린 사람, 그리고 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제 참사 때 화재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대피한 사람과 잘못된 판단과 지시를 내리고 또 행한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이기심이 한 데 모여 최악의 참사를 일으킨다. 이는 슬픔과 분노, 자기반성, 위험에 대한 경각심 등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며 책에 대한 감상을 더욱 묵직하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모여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이야기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책 <지금, 너에게 간다>.
끝으로 수일을 비롯한 수많은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짧은 글을 마무리해본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ebook도서만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