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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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구와 함께 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 방문한 적이 있다. 본 목적은 고래박물관으로, 규모도 크고 컨텐츠도 알차서 제법 만족스럽게 관람한 뒤 기대감을 안고 바로 옆에 있는 생태체험관에 들른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래박물관과 비교해서 생태체험관의 만족도는 굉장히 떨어졌다. 겉에서 볼 때도 그리 커 보이지 않았던 생태체험관은 한눈에 보기에도 돌고래가 살만한 환경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시 3마리 정도가 살고 있던 수족관은 한 마리가 살기에도 턱없이 작아 보였고, 조금만 움직여도 벽에 부딪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좁은 공간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얼마나 큰지 우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탈출하는 심정으로 빠져나왔을 정도였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후 돌고래와 관련된 컨텐츠를 볼 때면 그 좁고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살고 있던 돌고래들이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가 궁금하면 좋으려만, 그때의 그 돌고래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을까가 걱정됐다. 그래서 책 <휴머니멀>에서 울산 생태체험관 돌고래를 언급한 부분을 읽었을 때 더욱 착잡하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20년 1월 초부터 말까지 총 5부작으로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를 동명의 책으로 풀어낸 <휴머니멀>은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존을 위한 냉엄한 투쟁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동물들이 인간의 이기심 속에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끝내는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모습도, 인간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교감하고 새로운 삶을 얻는 모습도, 삶의 터전을 침해당한 동물들이 인간과 갈등을 빚는 모습도, 모두 숨기거나 더하는 것 없이 사실대로 드러낸다.


첫 시작은 이미 익히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의식하고 또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코끼리 학대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어릴 때부터 움직임을 제한받고 굶주리며 폭력에 노출되어 끝내는 죽거나 세뇌당해 죽을 때까지 학대 속에 살아가는 코끼리들의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아무리 눈이 멀고 몸을 움직일 수 없어도 인간의 소유물로써 끝까지 그 역할을 다해야 하는 끔찍한 삶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학대에 노출되지 않은 코끼리의 삶이라고 평온한 것은 아니다. 그 거대하고 독특한 상아로 인해 수많은 밀렵꾼들의 목표물이 된 코끼리들의 죽음은 끔찍하다. 상아를 조금이라도 더 길게 꺼내기 위해 살아있는 코끼리의 머리를 그 어떠한 조치도 없이 그대로 잘라내버리는 방법은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다. 책에는 밀렵꾼이 지나간 자리를 그대로 담은 사진이 있는데, 보는 순간 숨이 막혔을 정도다.


단지 재미를 위해 총을 든 트로피 헌터들과 그들이 지나간 자리 역시 끔찍하기로는 뒤처지지 않는다. 트로피 헌터들은 게임처럼 자신의 사냥 스킬을 올리고 장비를 갖추고 거액을 지불해 던전에 입장해 몬스터를 잡는 것처럼 동물을 잡는다. 자신들을 옹호하고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만 총을 쏘는 그 순간의 표정을 보면 진심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더 말 할 것도 없이 잡은 동물들을 집 안에 박제해놓은 모습만 봐도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드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전통을 위해, 또는 먹고살기 위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해하는 것이라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몰이사냥이라는 잔인한 방식으로 돌고래들을 잡아 온 바다를 피로 물들이는 타이지 마을을 보면 전통과 생계수단이라는 이유로 넘어가는 것에도 정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아남은 돌고래들이 좁은 가두리에서 살다가 다시 좁은 수족관으로 옮겨져 30년이라는 수명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4~5년 만에 죽음을 맞는 모습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확실하게 보여준다.(울산 고래생태체험관에 있는 돌고래 4마리가 타이지에서 수입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이 참혹하고 잔인한 모습만이 아니라는 거다. <휴머니멀>은 고통 속에 살아가며 상처 입은 동물들을 보호하고 살려내는 것도 결국 인간임을, 희망과 가능성 역시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늙고 병든 코끼리들을 데려와 돌보는 차일러트, 매해 타이지 마을을 찾아 돌고래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팀, 어린 곰들을 보호하고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킬햄 등 수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 수 있다. 앎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이 품고 있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멀>은 인간의 이기심을 낱낱이 밝히거나 그 추악한 진실에 대해 조명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공존하는 삶을 위해 다 같이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동물보호 활동가가 될 수는 없고, 될 필요도 없"지만 "모두가 각자의 일상 속에서 생태계를 위한 작은 실천을 행하는 것. 이 각성이 주는 자괴감과 위기감에 비추어, 해야 할 일에 나서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멀리"할 것을 당부한다. 이것이 공존을 위한 작지만 담대한 첫걸음임을 밝힌다.

그러니 우리 함께 이 책을, 이 책이 힘들다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하나씩 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이 책을 통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그 간절한 마음을 이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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