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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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되고 나서는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10대 시절 책에 대한 추억을 돌이켜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다.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와 기묘하고 섬뜩한 상상력으로 마니아층이 있는 오츠이치 작가, 통통 튀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있는 한나 시리즈(<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딸기 쇼트케이크 살인사건> 등 '디저트 이름+살인사건'을 제목으로 한 시리즈물)의 조앤 플루크 작가, 그 외에도 여러 작가의 작품들이 학창시절의 추억을 장식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전까지 접한 것이 별로 없는 순수한 시절이기도 했고 한창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렬한 것에 끌리던 때라 훅 하고 빠져들었던 것 같다. 잘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잊고 밤새 읽다가 다음날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많이 졸았었다.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때 책을 읽으며 느꼈던 두근거림과 묘하게 붕 뜬 느낌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다.


그래서 오랜만에 미스터리 장르물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추억과 함께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영화 포스터처럼 분위기 있는 표지와 제목 <실버로드 사라진 소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법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작가의 고향인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스릴러물은 한 소녀의 실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실버 로드라고 불리는 길 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소녀가 실종되고 3년이 되는 시기로, 그의 아버지 렐레는 단 한순간의 휴식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은 채 딸을 찾아 길 위를 달린다. 그는 새벽에도 한낮처럼 밝은 백야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고 자신이 확인한 곳은 지도 위에 체크하면서 꼼꼼하게 집착적으로 처절하게 딸을 찾는다. 딸이 실종되고 그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던 그를 탓하던 아내는 집을 나가고 주위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바라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홀로 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숨까지 턱 하고 막히게 만든다.


그리고 책은 그의 이야기와 함께 외로운 소녀 메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시간대가 동일한지, 둘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것이다.


메야는 제대로 된 집과 가족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로, 엄마와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엄마는 어린 메야가 없으면 살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하며, 그런 엄마와 함께하는 메야 역시 불안정하다. 엄마의 인터넷 남자친구와 살기 위해 이사를 왔지만 그 집 역시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은 단 한 사람, 이곳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남자친구 칼 요한이다.


접점도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 불안정한 그들의 심리는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메야의 이야기가 좀 더 느슨하지만 신경이 끊어질 듯한 긴장감이 낮은 보폭으로 계속해서 기어 온다. 언젠가는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면서 경계할 수밖에 없다.


압권은 <실버로드 사라진 소녀들>가 사람을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신경을 곤두서있게 만드는 백야의 음울함과 숨 막히는 더위를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두 사람이 백야를 보내는 모습은 책을 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버겁게 느껴진다. 딸을 찾기 위해 어디든 뛰어드는 렐레의 몸에 가득한 악취와 날 선 신경은 글자 너머로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다. 잠들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메야의 땀 냄새 역시 마찬가지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묘미는 갖은 상상과 의심, 추리 속에서 인내를 갖고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고, 호기심을 끌어안고 숨까지 꾹 참아가며 달리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렐레로 인해 의심의 시선은 모든 이들에게로 향하고 그만큼 상상력은 점점 더 몸집을 키운다. 딸이 실종된 이유는? 사라진 소녀의 행방은? 소녀의 실종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은? 렐레와 메야 두 사람의 연결점은? 온갖 것들을 상상하고 의심하고 추리하다 보면 책을 손에서 놓고 있을 때도 책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실버 로드 사라진 소녀들>은 숨 막히는 백야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어느 순간부터 교차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진실에 다가가는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다. 덕분에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모든 시간이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책 덕분에 꽉 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생생한 묘사와 범인을 찾기까지 계속되는 의심이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게 하는 책을 읽고 싶다면 권해주고 싶다. 분명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호기심이 해결될 때까지 책을 머릿속에 지우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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