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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평점 :
세상에는 사랑을 말하는 수많은 표현들이 있듯, 이별을 말하는 수많은 표현들이 있다. 세상 온갖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넘쳐나는 사랑을 지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한 이별에 도달했을 때도 그 속에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의 허무함을 표현할 표현들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더 이상 들어줄 이 없는 외로운 독백은 한숨 속에 쉬이 흩어져 버리고, 대개 그 형체를 찾기보단 더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이 책 <참 좋았다, 그치>를 읽었을 때 나는 낯섦 음울 느꼈다. 왜 하필 이별에 대한 이야기일까. 저기 꼭 껴안아주고 싶은 동화같이 예쁜 사랑 이야기가 끝없이 존재하는데. 그런 생각에 조금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섦을 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 공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이별들이, 이별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표현들이 서서히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아프게, 또 때로는 후련하게 지난 사랑의 추억과 이별의 순간과 그 이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끝을 고했던 이별의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홀로 남겨져 있었던 이의 아픔,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홀로 하는 문답, 끝내 떠나가 버린 이를 그리워하다가 미워하다가 다시 그리워하는 마음.
똑같은 사랑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이별은 없었다. 클리셰 같은 뻔한 이별 속에도 다른 마음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만큼 이별을 표현하는 말과 방식도 다양해서 상황에 맞지 않게 감탄하기도 했다.
특히 훅 하고 와닿았던 것은 "아파라. 너 아주 많이 아파라. 분명 네게도 선명히 남아 있을 우리의 기억으로."라는 문장. 어쩜 이렇게 서글픈 바람이 있을까 하며 감탄했다.
아픔 이후에는 성장이 있다고, 이별 후 홀로 남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문장들에서는 살면서 찾아올 또 다른 아픔들을 이겨낼 힘을 느끼기도 했다. 하루 어린 내가 하루 더 어른이 될 나에게 하는 말도, 여지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변화하는 계절 속에 자신을 놓아주는 태도도, 모두 힘든 시기를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책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과 다르게 일러스트들은 모두 사랑의 순간들을 담고 있어 전체적으로 조금 서글픈 느낌이었다. 저런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충만한 시간을 지나 끝에 도달했을 때 느낄 감정이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부제목처럼 사랑이 끝난 후에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 <참 좋았다, 그치>. 이별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표현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어딘가 조금 먹먹한 책. '그'와 '치' 사이에 있는 긴 울림이 마음을 파고드는 그런 책이었다. 서글픔에 가까운 그런 느낌과는 별개로 매번 다른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던 조금 색다른 느낌의 에세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