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번리의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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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친근한 노래와 함께 전 세계 소년 소녀들의 마음에 행복의 주문을 걸어주었던 사랑스러운 소녀 앤. 만인의 친구인 그녀이지만, 내가 이 소녀를 만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문으로는 익히 들었지만 도통 연이 닿지 않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이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자신만의 소박한 삶과 행복을 만들어나간다는 소녀의 존재는 내 가슴속에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소녀는,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어린 소녀를 만나기에 앞서 조금 성숙해진, 소녀와 숙녀의 경계에 선 모습을 마주하게 됐지만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또 앞으로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 올랐을 정도로 그녀가 마음에 쏙 들었다.


친구들과 힘을 모아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즐거움, 자신의 이상에 따라 살아가며 아이들을 가르쳐나가는 자부심, 소소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알알의 행복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채로운 색색의 세상을 선물해주는 자연과 함께 시간의 흐름을 시간 속에 흘려보내지 않고 뚜렷하게 인식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부러움 그 자체였다. 당장이라도 그녀가 살고 있는 에이번리로 달려가고 싶은 욕심, 그녀와 마주하고 앉아 따뜻하고 달달한 홍차와 마릴라가 만든 자두 절임을 먹으며 마음껏 수다를 떨고 싶은 욕심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부추기는 통에 꾹 참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앤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에이번리의 주민들 또한 얼마나 멋있는 이들인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꼭 안아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면모를 하나 이상 갖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과 이야기를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없이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상상 속의 사탕으로 덧셈을 배울 때 양손의 사탕을 합치면 몇 개냐는 질문에 "한 입 가득요."라고 답하는 앤의 제자와 친구의 이름에 대해 여왕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며 이름은 그 사람에 따라 멋질 수도 추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다이애나, 이상과 실수, 그리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조언을 앤에게 해주는 앨런 부인, 세상 그 어떤 이보다도 생동감 있는 모습을 하고 로맨스와 현실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라벤더는 앤과 함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앤과 그녀의 이웃들은 당시에는 다시는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 같은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일이 생기기도 했다. 마릴라의 지적처럼 이 상상력 좋은 소녀는 한없이 높이 떠오르다가 한순간에 쿵, 하고 떨어지는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서로의 장점은 물론 단점도 훤히 보며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다.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 이게 삶이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꼭 지적해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여러 사정에 의해 앤과 마릴라와 함께 살게 된 귀여운 쌍둥이 남매에 대한 부분으로, 얌전하고 성실한 도라보다 도라를 괴롭혀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말썽을 부려 모두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드는 데이비를 더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은 보고 있는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따른 거라지만, 어쩜 이 사랑스러운 꼬마 숙녀에 대한 애정을 저울질할 수 있는지.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그에 맞춰주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일수록 눈과 손이 더 가게 된다는 사실이 괜히 서글프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장 책 속으로 들어가 다른 이들에게 도라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퍼붓듯이 얘기해주고, 도라를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 모든 행복과 슬픔, 장점과 단점이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것이 바로 에이번리의 앤과 주민들이었다. 가슴 깊이 새겨두고 싶은 문장도, 닮고 싶은 모습도 가득 기록할 수 있어 얼마나 좋았던지.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행복을 느끼고 또 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이 책의 전작과 후속작을 찾아봤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


이미 수많은 친구들이 있겠지만 진심 가득 담아 말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정말이지, 다음 만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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