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 몸의 감각을 되찾고 천천히 움직이고 필요 없는 것은 내려놓고
히로세 유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어쩌다 보니 50살이 되었다는 작가의 신작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는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떠올리고 음미하게 해주는 책이다. 작가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로 첫 발을 내디디며 자신이 그동안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하나씩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옆에 두고 한없이 까먹고 싶은 초콜릿 같은 즐거움도, 두고두고 곱씹으며 후회하고 안달 낼 것 같은 슬픔도 모두 이유가 있다는 말. 그 말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섬세하고 올곧다. 분명 책 임에도 불구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선물해 준다.


이 한 권에 담겨있는 것들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결국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다’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지금까지 무수히 들었던 그 말. 하지만 깊은 눈을 가진 어른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하나씩 세심하게 꺼내놓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이 가슴에 진심으로 새겨진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나의 하루, 일상, 삶은 어떤지 생각하게 되며,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행복의 주문은 내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루를 만들어가고 일상을 가꾸어가며 삶을 어루만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천천히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기에, 작가가 말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책에 있는 것들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기에 독자는 그것들을 발판 삼아 자신의 것을 찾아가게 된다.


그래도 행복은 조금씩 비슷한 부분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매일 아침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차 한 잔의 시간, 마음을 담아 힘주어 적었기에 하나씩 하나씩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하고 싶은 일 목록, 스스로를 점검하며 반성하는 시간, 깊게 호흡하고 자신의 움직임을 의식하며 천천히 움직이는 것, 닮고 싶은 롤모델은 갖는 것, 맨발로 걸으며 피부로 느끼는 세상,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들기에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 식사,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일상의 아름다움, 마음을 담아 전하는 "고맙다"라는 말.


덕분에 잊고 있었던 행복의 주문을 몇 개 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내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행복의 주문도 하나씩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


시린 손끝에 와닿는 따뜻한 온기, 창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이른 새벽 떠올랐다가 느지막이 모습을 감추는 태양, 파-란 하늘 위로 동동 떠있는 새하얀 뭉게구름, 각양각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꽃과 풀과 나무,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바람, 몽글몽글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감촉, 벌겋게 익은 얼굴 위로 내려앉는 시원함,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카멜레온 같은 하늘, 오른손으로 힘주어 쓰는 편지, 새하얀 종이 위로 번지는 상상의 세계, 마음속까지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책, 크게 숨을 들이키며 즐기는 산책,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 예쁘고 귀여운 무언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지금까지 무수히 겪었고 앞으로도 무수히 겪을 첫 경험, 혼자 느릿느릿 나만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시간과 소중한 이들과 함께 발맞추어 걷는 시간, 엇박자에 분개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


그 외에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며 나를 위한 행복의 주문은 결국 내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곁에 두고 한 장씩 넘겨보고 싶은 책,이라는 주문도 함께.
글 중간중간 담겨 있는 사진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가슴 깊이 들어오는 책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좋은 책을 만나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됐으니, 참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