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우울할까 - 멜랑콜리로 읽는 우울증 심리학
대리언 리더 지음, 우달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왜 우울할까, 라는  이 책의 제목이 궁금했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한 물음이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우울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난 왜 우울을 느낄까, 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궁금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단어, 멜랑콜리는 장기적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다. 이 책은 우울에 대해 다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상실과 애도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주 깊은 얘기들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에서 시작해 상실과 애도에 대한 얘기들이 예술과 창조로 연결된다. 이 책은 특히 프로이트의 얘기를 자주 인용하는데, 애도와 멜랑콜리아는 상실이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둘을 구별하자면, 멜랑콜리아환자는 무엇을 상실했는지가 늘 분명치 않으며, 애도하는 사람은 상실대상을 어느 정도 아는 것. 우린 상실한 사람과 그 사람에게서 상실한 것을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멜랑콜리아는 자존감의 저하와 자기 생각을 말로 분명히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상실된 것은 무엇인가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상실이란 단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려졌다. 상실이라는 것이 어쩌면 허무와 공허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구멍과 비어있는 무언가를 형성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상실이란 건 비어있음이 아닐까, 결핍된 것이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들. 그러면 그 비어있는 공간을 우린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이고, 그 자리가 예술과 창조로 우릴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들. 내게도 예술과 창조적인 어떤 행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난 그것을 갈망하는데..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이 책의 멜랑콜리아 환자를 묘사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했고, 많은 답답한 부분들이 해소되었던 것 같다. 실존과 관계되는 존재론적인 비난, 자기자신이 부적격하다는 것, 자기자신만을 탓하는 것..스스로를 꾸짖고 싶어하는 욕구..어쩌면 이런 욕구와 특징들이 내가 살아가는 것을, 내가 삶 안에 머무르려는 욕구를 저지시키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또한 살아간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단 느낌을 자아내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자기비난은 내화된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이라고 한다. 내 안에도 '상실된 대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것은 무엇일까. '(상실된)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에 드리워졌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찾고 싶다. 만약 내 안에도 그런 그림자가 있다면. 그래서 알고 싶다. 나는 무엇을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 우울이 아주 오래전 부터 지속되어왔다는 것을 알기에.. 난 도대체 무엇을 비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비난은 때때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자신에게 상처를 지속적으로 주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 멜랑콜리아의 자기비난은 죄의식에 빠져 있다란 얘기가 나온다. 최악의 인간이고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며 대죄인이라는 확신. 이 문장을 보니,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폐라는 말을 번복하는 나에게, 도움을 계속 쳐내기만 하는 나에게, 넌 너자신이 그런 도움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언니의 말. 그렇다. 나는 .. 나자신에게 그럴 권리, 그럴 가치를 모두 다 빼앗아버렸다. 난 나자신을 자꾸 죄인으로 몰고가는 것 같다. 조금 더 깊은 감정안에선, 나의 존재조차도 죄로 몰고 간다. 그래야 모든 부정적인 말과 상황과 관계에 대해 해석할 수 있으니까, 란 나의 핑계를 덧붙이며. 그리고 부재는 결코 분노 없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단 얘기들, 분노는 의식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나는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 나자신에 대한 분노는 느껴도,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분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억제할 뿐더러, 분노하지 못한다. 무쪼록 분노가 의식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단 문장이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애도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난 애도할 일이 일어난 적이 없는지라.. 공감하며 읽어내려가기는 힘이 들었다. 특히 난, 애도와 우울을 예술과 창조로 연결시킨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은 우리가 슬픔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고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상실로부터 무언가가 창조될 수 있다는 얘기들. 상실은 결코 완전히 보상받을 수 없다는 얘기도 눈에 들어왔다. 또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와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작가와 예술가가 보여준다는 얘기. 그런 작가와 예술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작품들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해방시키므로.

계속해서 많은 예들과 눈길이 가는 많은 문장들이 나의 내면속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 조금 어렵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냥 몇 문장들이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실망은 없었다. 뻔한 말과 뻔한 해답이 아닌, 색다른 관점들과 새로운 사실들을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얘기해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결국 멜랑콜릭 주체들에게는 '그들을 해방시켜줄 시가 필요하다'란 얘기로 끝을 맺는다. 창조와 예술에 대한 가능성, 우리의 인식과 언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이란 책이 많이 생각났는데, 이 책 역시 창조와 복원력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이런 책들을 통해, 또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끼는 우울과 또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상실이라거나 결핍들이 .. 내게 해로움만을, 부정적인 것만을 주는 것은 아닐런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삶이, 내가 겪는 과정들로 인해 완전히 패배한 것이 아닐런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냥 조그마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나의 내면을, 나의 감정을, 나의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무쪼록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많은 부분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애도를 겪었던 사람들이나, 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세세히 읽어내려가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혹은 포괄적으로 보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은 채로 넘기며 읽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에. 가볍지 않은 책이기에, 더 가치를 느꼈던 책. 우울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얘기해준 책이 아닐까 생각되었던 책이다. 무쪼록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 같아, 좋다. 예술과 창조에 대한 가능성. 나의 우울을 보는 관점, 나의 과거를 보는 관점이 이 책으로 인해 달라진 거 같다. 우울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던 책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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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1-12-29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